[ADB총회 화두]금융질서 교란 주범 '헤지펀드'규제

  • 입력 2000년 5월 7일 20시 52분


제33차 아시아개발은행(ADB) 총회의 핵심 화두는 국제금융 질서를 교란하는 주범으로 떠오른 헤지펀드(투기성 국제단기자금)에 대한 규제. 주최국인 태국을 비롯해 상당수 회원국이 97년말 금융위기 당시 국제 투기자본의 횡포를 체험한 탓에 국가간 공조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았다.

이번 총회에서는 막연히 헤지펀드의 폐해를 규탄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국가간 통화스와프(교환) 협정을 통해 유동성 긴급지원 체계를 도입하고 역내 단기자본에 대한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키로 하는 등 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성과를 거뒀다.

▽금융위기 재발방지 장치 도입〓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ADB 회원국들은 ‘외부상황이 급변하면 어느 나라라도 다시 환란(換亂)에 빠져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에 따라 동남아국가연합(ASEAN)과 한국 중국 일본의 모임인 ‘ASEAN+3’ 재무장관 회의는 역내 국가의 ‘외환 안전망’을 강화하는 방안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대표적 합의사항은 개별 국가의 중앙은행간 협의를 통해 통화스와프 협약을 체결키로 한 대목. 투기자본의 공략으로 A국가의 유동성에 문제가 생길 경우 스와프협약을 맺은 주변국들이 달러나 엔 등을 A국가의 통화와 맞바꾸는 방식으로 지원해주는 체계를 공식화했다. 외환보유고가 충분치 않거나 금융시장 기반이 취약한 국가 입장에서는 자본유출에 따른 충격을 일차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완충장치를 갖추게 되는 셈. 현재 통화스와프는 한국과 일본이 50억달러, 일본과 말레이시아가 25억달러 규모의 협정을 체결했고 올 3월 ASEAN 10개국이 합의한 바 있어 해당 국가가 총 13개국으로 확대된다.

한국이 일관되게 도입을 주장해온 단기자본에 대한 공동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이 이번 총회에서 합의된 것도 중요한 성과로 꼽힌다.

▽수면 아래로 잠복한 국제 금융질서 재편 논의〓일본이 국제통화기금(IMF)에 대응해 창설을 시도해온 아시아통화기금(AMF)은 ASEAN과 한중일간의 통화스와프 도입을 계기로 사실상 무산됐다.

일본측은 ‘국제자본의 급격한 유출입에 대처하려면 아시아 국가의 유동성 위기를 전담해 지원하는 별도의 통화기금 설치가 불가피하다’는 논지를 폈지만 일본의 독주를 우려한 중국 등의 견제로 통화스와프를 통한 해결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개발금융이 주임무인 ADB의 기능만으로는 역내 금융시장의 안정을 유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논의도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ADB에 구제금융 지원 기능을 추가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거론되는 등 국제기구의 ‘신 역할분담론’은 당분간 국제금융계의 주요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치앙마이(태국)〓박원재기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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