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정부 6400억원 '性차별 보상'…23년 법정공방 끝에

  • 입력 2000년 3월 23일 19시 36분


미국 정부는 23일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 받아 정부 기관 채용을 거부당한 피해자들에게 모두 5억8000만달러(약 6380억원)를 보상하기로 결정했다.

미 법무부는 이날 미 공보처(USIA·현재는 국무부에 편입)와 산하 국제라디오방송인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 채용을 거부당했던 여성 1100명이 정부를 상대로 낸 집단 소송에 대한 해결책으로 거액의 보상금을 지급키로 했다고 밝혔다.

미 법무부는 정식 보상금과 별도로 2270만달러(약 249억7000만원)의 밀린 보수와 이자도 지급한다. 이같은 보상 금액은 성차별에 대한 보상금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다.

이들 여성은 1974년부터 1984년 사이 USIA와 VOA의 국제라디오 방송요원과 작가 기술자 편집인 등으로 응시했다가 ‘여자이기 때문에’ 불합격됐다. 이들은 대부분 영국 BBC방송 등 미국 및 외국의 언론 매체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었다.

이에 탈락 여성 5명이 1977년 정부의 성차별을 문제삼아 처음 소송을 냈다. 이 소송은 점차 집단소송으로 확산됐고 23년에 걸쳐 법정 공방이 계속돼 왔다. 미국에서는 1964년부터 직원을 채용할 때 성차별을 못하도록 돼 있다.

소송을 낸 여성들 측의 브루스 프레드릭슨 변호사는 “USIA와 VOA는 남성 응시자들이 유리하도록 어떤 경우에는 여성들의 시험성적을 변조하고 아예 없애는 등 관련 기록을 조작했다”며 “직원 채용과정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이 일상적으로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관련 분야에 상당한 실력을 갖춘 유능한 여성들이 입사하지 못한 대신 경험도 없고 기술도 갖추지 못한 남성들이 대거 합격했다는 것이다.

미 정부는 1984년 한 연방법원에서 성차별에 대한 유죄 판결을 받고 두차례 항소했으나 모두 패소했다. 특히 USIA 등에서 근무했던 여성인력 비율이 다른 직종과 분야의 여성인력에 비해 현저하게 낮았다는 통계학적 사실도 속속 불거졌기 때문이다.

미 정부와 피해 여성들간에 이루어진 이번 합의는 성차별 소송을 담당해 온 법원의 승인을 얻어 곧 실행될 예정이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 eligiu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