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원코너]허승호/'슈퍼화요일'뒤안의 동성연애자法

  • 입력 2000년 3월 8일 19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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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슈퍼화요일'로 불리는 3월7일 세계의 관심은 '차기 미국대통령 후보의 자리를 누가 선점하느냐' 하는 문제에 집중됐다.

그러나 미 캘리포니아주에서는 같은 날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가 주민투표에 부쳐졌다.쟁점이 된 것은 동성연애자의 지위에 관한 것.

캘리포니아주는 1960년대 동성애자 권리운동의 메카로 미국 내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가장 덜한 곳. 이 지역은 지난 1월 17일 마틴 루터 킹 2세 기념일에 시 교육청이 학부형들에게 '동성애자 등 생활방식이나 신념이 다른 사람을 차별하지 않도록 자녀를 교육해달라'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때문에 이날 투표결과는 캘리포니아 주는 물론 미국 전체 동성연애자의 권리 및 사회적 지위와 직결된 것으로 이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이날 투표결과에 큰 관심을 기울여왔다.

이날 구체적으로 투표에 부쳐진 것은 주 헌법에 '결혼은 남자와 여자 사이에 이뤄질 때만 유효하다'는 조항을 추가할 것인지 여부. 캘리포니아주의 피트 나이트 상원의원이 제안한 것으로 법안 22항으로 불리어왔다. 법안 22항에 대한 개표결과는 찬성 61%, 반대 39%로 동성연애자들의 패배로 나타났다.

사실 캘리포니아주 법률은 지금도 동성간의 결혼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법안 22항 통과로 사실상 달라질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동성애자가 동성간 결혼을 허용하는 타 주에서 결혼한 후 캘리포니아주로 되돌아 올 경우 '타 주에서 취득한 권리와 지위를 인정한다'는 법령에 따라 지금까지 사실상 결혼을 인정받아왔다. 법안 22항은 이마저 부인하자는 것.

동성결혼이 허용될 경우 이들도 연금, 보험 등에서 이성 부부와 똑같은 권리를 얻게 된다.

법안찬성자, 즉 동성결혼 반대자들은 혼인의 신성함을 지키기 위해서는 동성간 결혼을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의 이혼율이 50%를 넘을 만큼 가정 붕괴문제가 심각한 현실에서 동성결혼마저 허용될 경우 결혼의 개념 자체가 흔들린다는 것이 이들의 견해.

미국내 보수주의자들이 여기에 동조하고 있으며 정당별로는 공화당이 상대적으로 이 쪽에 가깝다. 이 주장은 특히 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이 지역의 한인교회들도 이를 전폭적으로 지지, 교인들로부터 이 법안에 찬성하는 서명을 받기까지 했다.

그러나 동성결혼 인정론자들은 "쟁점의 본질은 개개인이 스스로의 삶의 방식을 선택할 권리를 인정할 것인가 여부"라고 주장하고 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이같은 견해가 확산되고 있으며 개방적 분위기가 강한 이 지역 언론들도 비슷한 논조다.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일간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공개적으로 법안 22항 반대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특히 60년대 학생운동의 진앙으로 진보적 전통이 강한 버클리 대학은 몇 달 전부터 학교신문을 법안 22항 비판 기사로 뒤덮을 만큼 동성애자들에게 동정적이다. 7일자 대학신문 만평에서는 동성간 결혼을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은 혼인의 신성함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1960년대까지 남부지역에서 존속됐던 흑백간 결혼금지법의 망령이 부활한 꼴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이날 투표에서 법안 22항이 통과됨으로써 동성애자들의 지위는 일단 타격을 입게 됐다.

그러나 동성애자들은 포기하지 않고 연방최고법원에 이 법안은 위헌이라며 제소할 계획. 사실 동성애자들이 투표에서 패배하리라는 것은 그 동안의 여론조사를 통해 예견되어 온 일이다.

동성애자 권리운동이 이날 투표에서는 패배했지만, 61대 39이라는 수치가 보여주듯 동성애나 동성애자를 이해하고 용인하는 분위기가 점점 확산되는 것은 막기 힘든 추세이기도 하다.

<샌프란시스코=허승호 통신원>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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