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 뒤집어 본 소설 '거트루드와 클로디어스' 美 반향

  • 입력 2000년 2월 21일 19시 42분


햄릿의 삼촌 클로디어스는 형인 선왕(先王)을 독살하고 그의 아내를 빼앗음으로써 영원히 속죄될 수 없는 죄업의 길에 들어섰다. 나약한 왕비 거트루드는 야비한 범죄의 공모자가 됐다.

과연 그들은 구제할 길 없는 악인들이었을까. 무엇이 거트루드로 하여금 남편을 죽이고 시동생의 품에 안기게 했을까.

퓰리처상을 2회 수상한 미국의 저명 작가 존 업다이크(68)가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을 뒤집어 본 소설을 내놓았다. 제목은 ‘거트루드와 클로디어스’.

8일 미국 서점가에 등장한 이 소설이 독서시장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 뉴욕 타임스 등 주요 일간지의 북섹션과 주간지 ‘타임’ 등이 앞다투어 이 소설에 대한 서평을 게재했다.

소설은 ‘햄릿’의 막이 오르기까지 덴마크 왕가를 중심으로 전개된 일련의 상황을 조명한다. 작가의 눈에 비친 주인공들의 모습은 우리가 셰익스피어의 목소리를 통해 들어온 것과 사뭇 다르다.

너그럽고 사려깊은 공주 거트루드는 아버지인 부왕의 강압에 따라 힘센 전사(戰士) 출신의 남자와 결혼한다. 왕이 죽자 부마인 남편은 왕위에 오르지만 거트루드는 나이가 들면서 힘만 센 남편보다 매력적인 시동생에 끌리게 된다. 두 사람은 열정을 억누르지만 끝내 헤어날 수 없는 치명적인 사랑에서 빠진다. 나약한 왕자 햄릿의 모습이 겹쳐지는 것은 물론이다.

소설에 대한 평은 크게 엇갈리고 있다. 인터넷 서점 아마존은 “엘리자베스 시대의 시각으로 수놓아진, 셰익스피어 명작에 대한 최상급의 위성(衛星)작품”이라고 평했다. 반면 ‘북리스트’지는 “풍부한 내용을 가진 역사소설이었어야 할 작품이 단지 케케묵은 시대극으로 전락했다”며 “업다이크는 인물들에 참다운 개성을 불어넣는데 실패했다”고 악평을 퍼부었다.

주요 일간지의 평은 대체로 호의적. 워싱턴 포스트는 “업다이크는 독자가 동일시해온 대상을 햄릿에서 거트루드와 클로디어스로 옮겨놓는데 성공했다”고 평했다. 뉴욕 타임스는 “지금까지 쓴 작품 중 가장 공감을 살 수 있는 여주인공을 창조했다”고 작가의 솜씨를 높이 평가했다.

업다이크는 1950,60년대 미국 중산층의 평범한 생활을 그려 명성을 얻었고 ‘달려라 토끼’ ‘돌아온 토끼’ 등 ‘토끼 연작’ 이 잇따라 호평을 받으면서 미국의 대표작가 중 하나로 떠올랐다. 1982년 ‘토끼는 부자’로, 1990년 ‘쉬고 있는 토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타임지 표지에도 두 번이나 등장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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