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 中대륙의 품으로]한국과 관계…250명 거주

  • 입력 1999년 12월 12일 19시 47분


마카오와 한국의 첫 만남은 종교 때문이었다. 마카오 중심가 카몽이스 공원에는 한국 최초의 로마 가톨릭교회 사제인 김대건(金大建)신부 동상이 있다. 조선의 청년 김대건은 1830년대 말 이곳에서 가톨릭신학을 배우게 됐다. 1844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귀국한 그는 종교활동을 하다 순교, 후일 성인으로 추존됐다.

30대 후반 이상의 세대에게 마카오는 ‘마카오 신사’란 유행가로 다가온다. 서정범(徐廷範)경희대 명예교수는 “멋쟁이의 대명사는 일제 때 ‘하이 칼라’였으나 해방 뒤 ‘마카오 신사’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당시 마카오를 드나들던 상인들이 양복 모자 구두 등 서양풍 맵시로 단장하고 이목을 끌었던 데서 유래한 말로 유행가를 통해 더욱 널리 퍼졌고 국어사전에까지 오르게 됐다.

최근 들어서는 마카오 하면 카지노장의 화려한 불빛이 넘실대는 도박의 도시를 연상하는 이들이 많다. 해외관광 붐을 타고 홍콩을 찾은 이들 가운데는 ‘한 번 당기러’ 마카오를 찾는 사람이 많다. 97년 한국의 한 여행사 직원이 슬롯머신 게임을 하다 12억원이 넘는 대박이 터져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마카오에 거주중인 한국인은 250명 안팎이다.

〈윤양섭기자〉laila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