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시장 세계속으로]보수파 반대꺾고 다시 개현전면으로

  • 입력 1999년 11월 18일 20시 02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가입을 위한 미중(美中)협상에는 중국 장쩌민(江澤民)국가주석과 주룽지(朱鎔基)총리의 위신과 정치생명이 걸려 있었다. 두 사람은 국내 보수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WTO가입을 밀어붙였기 때문. 그래서 두 사람은 교섭이 교착에 빠진 13일 미국측 대표들을 만나는 등 협상타결에 열성을 보였다. 주총리는 타결직전인 15일 오전에도 회담장을 찾았다.

▼협상타결 전력투구▼

주총리는 중국지도부 내에서는 친미파로 분류된다. 공산당 간부로서는 드물게 급한 성격이다. 지난해 ‘밀수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밀수하는 자들은 모두 죽여버려(殺,殺,殺)!”라고 말해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주총리는 4월 미국방문과 5월 유고주재 중국대사관 오폭사건 이후 궁지에 몰렸다. 미국은 주총리가 제시한 양보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어 중국대사관 오폭사건이 일어나자 보수파는 주총리의 대미외교를 ‘친미연약외교’라고 공격했다. 주총리가 추진한 국유기업 개혁의 부진과 2년째 계속되는 디플레도 주총리의 입지를 흔들었다.

그 무렵부터 주총리에 대한 공격신호가 곳곳에서 나타났다. 주총리 인맥인 홍콩 광다(光大)그룹 이사장 주샤오화(朱小華)가 밀려났다. 금융개혁을 뒷받침한 다이샹룽(戴相龍)인민은행장 교체설도 나왔다. 장주석이 국유기업 개혁을 직접 챙기기 시작했다. 장주석과 주총리 사이에 불화설이 나돌기도 했다. 주총리는 관영매체에 등장하지 않았다.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리펑(李鵬)상무위원장과 장춘윈(姜春云) 쩌우자화(鄒家華) 부위원장 등 ‘보수파 3인방’이 주총리 비판을 주도했다. 과거 WTO협상 책임자였던 리란칭(李嵐淸) 부총리와 국유기업개혁을 담당했던 우방궈(吳邦國)부총리도 가세했다. 장주석의 후계자로 알려진 후진타오(胡錦濤) 국가부주석은 주총리의 디플레 대책을 비난했다. 리루이환(李瑞環) 전국정치협상회의 주석도 주총리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군부도 마찬가지였다.

주총리 반대파는 지방으로 사람들을 보내 WTO 가입정책을 비난했다. 이에 따라 “외국의 값싼 원유가 들어오면 다칭(大慶)유전 등 모든 유전이 망한다” “1000만명 이상이 직장을 잃는다” “자본시장 개방으로 금융위기가 온다” “매년 730만t의 밀을 미국에서 수입해 농민들이 큰 피해를 본다”는 유언비어가 지방에서 나돌았다. 룽융투(龍永圖) 대외경제무역부 부부장(중국측 WTO가입교섭 대표)이 “이해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유언비어는 가시지 않았다.

▼黨지도부서 힘실어줘▼

그러나 주총리에게 전기가 찾아들었다. 8월 하계휴양지 베이다이허(北戴河)에서 열린 당지도부 회의가 “개혁개방의 입장과 방향에는 변함이 없다”고 확인했다. 9월 공산당 제15기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4중전회)는 국유기업 개혁기간을 주총리가 당초 제시한 3년에서 10년으로 연장했다.

10월 청커제(成克傑) 전인대 부위원장이 독직으로 구속되자 주총리 재기는 좀더 분명해졌다. 주총리 반대파의 ‘아성’이었던 전인대 부위원장의 구속은 주총리의 ‘반격’으로 해석됐다.

총리의 재기에는 장주석의 역할이 컸다. 장주석은 개혁개방을 지속하면서 리펑 등 보수파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주총리 재기를 도왔다는 관측이 많다. 이번 미중협상 타결로 주총리는 다시 개혁의 전면에 서게 됐다.〈베이징〓이종환특파원〉

ljh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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