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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10월 24일 19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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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 대우경제연구소 사장〓97년의 아시아 금융위기를 어떻게 보는가. 아시아경제위기와 90년대의 스웨덴 핀란드 멕시코위기와는 무엇이 다른가.
▽바그와티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아시아 경제기적과 마찬가지로 아시아 금융위기도 각국마다 차이점이 있다. 한국의 경제기적은 외국인 직접투자에 힘입은 것이 아니라 한국민의 기업가정신이 이뤄낸 것이다. 대만과 싱가포르는 엄청난 규모의 외국인 직접투자에 의존했다. 아시아금융위기로 가장 먼저 붕괴된 국가는 태국이다. 한국은 건실한 경제성장을 이룩했지만 당시 아시아를 휩쓸던 돌풍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피해를 본 것이다.
▽이사장〓IMF처방은 너무 가혹하고 부당하다고 생각지 않는가
▽바그와티교수〓가혹과 부당은 서로 다른 개념이다. IMF가 멕시코 스타일의 위기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능력을 초과해 돈을 쓰는 국가엔 당연히 소비를 줄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다. IMF행동은 너무 위축되고 조심스러웠다. 한국스타일을 고려했다면 팽창정책을 도입해야했다.왜냐하면대규모 자본이 갑자기 떠나버리는 자본도피현상이 나타나면 당장 현금이 부족해진다. 이는 자본도피를 더욱 부추기게 된다. 이같은상황에선더많은자본을끌어들여자본도피로 생겨난 구멍을 메워야 한다.
아시아가금융위기에서서서히회복된 것은 IMF가 위축정책의 잘못을 깨닫고 팽창정책을 시작한 덕분으로 보인다.
▽이사장〓IMF는 한국에 기업과 금융기관의 구조조정, 노동시장의 개혁 등을 권유하고 있다. 이같은 정책이 금융위기극복에 필요한 것인가.
▽바그와티교수〓이같은 정책은 공황을 피하려는 IMF의 시도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미시경제기반은 튼튼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취약점 중 하나는 금융제도다. 한국은 은행차입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았고 재벌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정치권은 은행에 비효율적인 산업을 지원하라고 지시하기도 한다. 한국산업은 전반적으로 매우 효율적이지만 국제시장에선 이보다 더 효율적이어야 한다. 먼저 민주적 체계를 확실히 마련하고 금융제도도 국제화시켜야 한다.
부채비율 600∼800%는 과거제도의 틀 안에서나 가능했다. 오늘날엔 최소한 200∼300%로 줄여야 한다.
미국스타일의 자본주의를 모든 나라에 정착시키기는 어렵다. 미국 자동차회사는 전달 판매고가 감소했다고 해서 종업원들을 해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제너럴 모터스는 노조와 종신고용계약을 체결했다. 직원을 수시로 해고하면 직원들의 애사심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직원들의 충성심이 없다면 기업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어렵다.
아시아 기업의 최고경영자는 인간의 가치와 인성을 중요시한다. 한국의 노조는 강력하므로 선택의 여지도 없다. 미국식 스타일을 도입하여 노조를 처리한다면 사회적 물의를 빚을 수 있고 효율성을 저해할 수 있다. 미국의 노동력중 12∼14%만이 노조에 참가하고 있다.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식 자본주의를 도입하려는 것은 좋지도 않고 실행가능성도 없다.
▽이사장〓세계화 증권화추세로 카지노자본주의자들이 엄청난 부를 얻었다. 카지노자본주의에 대한 통제장치가 필요하지 않은가.
▽바그와티교수〓IMF와 미국의 실수는 자본자유화를 너무 성급하게 추진하려는 데 있다. 자본흐름은 매우 민감하다. 자본유출의 가능성이 상존해 있는 국가 경제는 항상 동요할 수 있다.
요즘 금융자본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이는 월스트리트―재무부사단 때문이다. 월스트리트는 미국의 양당에 상당한 돈을 기부하면서 미국정치에 큰 영향을 끼친다. 서머스 미국재무장관은 내 강의를 듣던 학생이었다. 루빈장관 등 이전의 재무장관들은 대부분 월가출신이다. 10명 중 9명이 월가출신이다. 월스트리트는 금융시장의 확대기회를 돈을 벌 기회로 생각한다. 이들은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금융자유화를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정부간섭도 무의미하고 시장장벽을 해체하려 했다. 심지어 금융체제도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월스트리트의 이같은 시도에 대해 각국은 조직적 대응을 해야 한다.
▽이사장〓국제기구를 보완하기 위해 아시아통화기금(AMF)이나 국제중앙은행을 설립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또 IMF나IBRD통제하의새로운비영리신용평가기관을 설립하는 것은 어떠한가
▽바그와티교수〓신용기관이 종종 한 국가의 신용등급을 갑자기 하향조정하여 자본비용을 높여 큰 타격을 주기도 한다. 인도가 핵실험을 하자 무디스는 인도의 신용등급을 내렸고 즉각 자본비용이 늘어났다. 무디스는 이렇게 할 정당한 이유가 없었다. 우리는 이렇게 무책임한 일을 하는 무디스에 대해 소송을 걸어야 한다.
내 생각에는 미 재무부나 월스트리트를 상대로 고소해야 한다. 우리는 추가적인 기구를 설립해야 한다.
▽이사장〓세계화가 전세계에 부와 소득의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바그와티교수〓세계적으로 빈곤계층이 크게 늘었지만 세계화가 그 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차입과 외국인투자 그리고 국제교역은 모두 세계화의 요소이고 이는 부와 번영의 원동력이다.
▽이사장〓한국은 외채와 국내채무를 갚기 위해 여러 산업부문에 시설투자를 줄이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바그와티교수〓한국에 더 많은 시간이 주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같은 금융위기에서는 문제가 기존 자산이 심각하게 저평가된다는 것이다. 옳게 평가된다면 미래전망은 훨씬 밝다고 본다. 외국인이 한국의 자산을 사들이는 때는 금융경색이 일어나고 경기후퇴가 있는 경우다. 바로 그런 때에 외국인이 한국의 자산을 값싸게 사들이는 것이다. 외국인은 돈을 갖고 있고 한국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위기로 인해 치러야 하는 대가다. 그렇기 때문에 위기에 빠지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외국은 아시아전역에서 헐값으로 자산을 사들였다. 2∼3년 후에 아시아경제가 회복될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엄청난 이익을 남기게 될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시기에 자산을 매각하고 싶지 않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IMF기금이나 해외금융계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다. 정부가 전적으로 시장에만 의존해서는 안된다.
▽이사장〓미국은 왜 개발도상국에까지 자본시장의 국제화를 강조하는가.
▽바그와티교수〓그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월스트리트 재무부 콤플렉스’다. 월스트리트는 최대한으로 시장을 개방하고 싶어하고 재무부는 이같은 견해에 동조한다. 미국은 시장변화에 따른 경제정책을 따르고 싶어한다. 이같은 사고방식과 월스트리트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개방압력이 거세진다.
미국기업들은 인도의 금융시장을 개방하도록 로비를 벌이지만 인도가 어떤 위기에 봉착하든지 상관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회사가 돈을 벌길 바랄 뿐이다. 이것이 바로 미국의회에서 경제논리가 진행돼온 방법이다.
▽이사장〓글로벌 스탠더드는 미국이 만든 스탠더드다.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바그와티교수〓어떤 스탠더드를 말하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생각이다. 관행에서의 투명성 등은 좋다고 생각한다. 투명성에 있어서 미국이 앞서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아시아에 경제위기가 닥쳐오자 동아시아의 모든 기업관행이 잘못됐다는 식의 얘기가 나왔다.
기존의 금융관행 등은 모두 버려야 하지만 이런 관행들도 한때 효율적이었고 이같은 관행으로 커다란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선진국들은 자신들만의 한계와 관심사, 계획, 가치관을 갖고 있으며 그들이 항상 옳은 것도 아니다.
〈정리〓임규진기자〉mhjh2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