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보수파「돈줄」베일 벗겼다… WP紙 특집게재

  • 입력 1999년 5월 3일 19시 49분


미국의 정치사를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대결로 분석할 때 어떻게 보수주의가 80년대부터 세련된 논리로 무장한 이데올로기로 급부상할 수 있었는가 하는 대목은 잘 설명이 되지 않는다.

미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싱크탱크인브루킹스연구소가 1916년에 창설되는 등 자유주의의 연원은 깊다. 그러나 보수주의를 대표하는 헤리티지 재단은 73년에 창설됐다.

미 워싱턴포스트지는 3,4일 이틀에 걸친 특집기사를 통해 그동안 빌 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우파 음해공작’의 배후로 지목돼온 리처드 멜론 스카이프(66)가 보수주의에 물적 기반을 제공한 숨은 대부였다고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스카이프는 강경보수성향의 헤리티지 재단과 함께 4대 보수주의 싱크탱크로 분류되는 온건보수의 스탠퍼드대 후버 연구소와 미 기업연구소(AEI), 중도보수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등에 40년동안 3억4천만달러(현재가치 14억달러)를 지원해왔다.

피츠버그시에 기반을 둔 수십억달러의 재산가였던 외가로부터 유산을 상속받은 스카이프는 스카이프 가족재단(자산규모 1억7천만달러)을 비롯, 사라 스카이프 재단(3천만달러) 앨러개니 재단(3천9백만달러) 등 4개 재단을 갖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스카이프가 정부의 권한 축소와 개인의 자유확대, 사유재산의 보호와 자유무역 등 보수주의 가치를 주장하는 연구소라면 무조건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름은 알리지 않아 항상 수수께끼의 인물로 머물렀다.

스카이프는 헤리티지 재단이 운영난에 허덕일 때는 연간예산의 42%를 지원하기도 했다. 미 전역 3백개의 보수주의 단체 중 1백11개가 그의 지원을 받았다. 그는 80년대와 90년대 보수주의의 기치를 높인 로널드 레이건 전대통령과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도 측면지원했다.

64년 공화당 대통령후보였던 배리 골드버그 상원의원의 선거운동을 도우면서 정치판에 발을 들여놓았던 스카이프는 골드버그의 참패를 계기로 보수주의를 결집하기 위해서는 ‘아이디어 전쟁’에서 자유주의를 이기는 것이 급선무라고 깨닫고 ‘투자’를 시작했다.

스카이프의 이름이 공개된 것은 그가 클린턴 대통령을 축출하기 위한 공작의 배후로 지목돼 연방대배심에 소환되면서부터. 그의 클린턴 대통령 축출공작은 탄핵재판에서 공화당이 패배함으로써 실패로 끝났다.

〈워싱턴〓홍은택특파원〉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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