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법원,「안락사 의사」케보키언에 실형 선고

  • 입력 1999년 4월 14일 20시 08분


미국에서 불치병에 걸린 말기환자들의 안락사를 도와온 ‘죽음의 의사’ 잭 케보키언 박사(70)가 13일 실형을 선고받았다.

미국 미시간주 오클랜드 순회 법원 제시카 쿠퍼 판사는 루게릭병 말기 환자를 안락사시킨 혐의로 지난달 26일 유죄평결을 받았던 케보키언 박사에게 2급 살인죄 및 통제 약물 투여죄를 적용해 10∼25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쿠퍼 판사는 “이번 재판은 안락사가 윤리적으로 옳고 그르고를 가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케보키언 박사가 법을 준수했는지 여부를 가리기 위한 것”이라며 “어느 누구도 법을 어겨서는 안된다”고 판시했다.

케보키언박사는 90년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요청에 따라 안락사 시술을 한 이래 1백 30여차례에 걸쳐 불치병 환자들의 안락사를 도왔다. 검찰은 여러 차례 그를 기소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루게릭병 환자인 토머스 유크(52)를 안락사시켰을 때는 사정이 달라졌다. 케보키언은 안락사 과정을 비디오로 녹화해 지난해 11월 미국 CBS방송 시사프로 ‘60분’을 통해 전국에 방영되도록 했다. 검찰은 이 비디오테이프를 증거로 그를 기소했고 지난달 2급살인죄로 유죄평결을 이끌어냈다.

케보키언박사는 안락사 옹호자들로부터는 시한부 인생의 고통을 덜어주는 ‘구원의 천사’로, 반대론자들로부터는 ‘살인기계’로 평가돼왔다. 임신중절 반대단체인 ‘미국생명연맹’은 “케보키언의 행동은 인간의 존엄성을 공격하는 잔혹한 살인행위”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안락사 옹호단체들은 “인간은 존엄성을 유지하며 죽을 권리가 있다”며 케보키언을 감쌌다.

13일 선고 후에도 장애인인권단체는 “그동안 장애인들을 살해해온 케보키언이 징역형을 선고 받음으로써 안락사 합법화 움직임이 끝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크의 부인 멜로디는 “케보키언이 유죄인 이유는 안락사가 불법이기 때문”이라며 안락사 합법화를 요구했다.

그동안 케보키언은 “안락사는 살인이 아닌 자비로운 행위”라며 자신을 흑인 인권운동가였던 고 마틴 루터 킹 목사에 비유했다. 이번에도 그는 만일 투옥된다면 단식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최근에 심경변화를 일으켜 항소심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 13일 판결을 들으면서도 평소와 달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날 수갑을 찬 채 법정을 나서던 그는 친구를 향해 쓴웃음을 지으며 한 마디 던졌다. “이것이 과연 정의인가?”

〈김태윤기자〉terren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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