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닛산車 『산넘어 산』…인수협상 중단-신용등급 격하

  • 입력 1999년 3월 14일 20시 13분


어쩌다 이 지경에 몰렸을까.

32년 일본 최초로 대량생산체제를 갖췄고 현재는 도요타 다음가는 일본 2위의 자동차 업체인 닛산자동차가 최근 창사이래 가장 큰 치욕을 당했다.

닛산의 지분을 인수하기 위해 협상을 벌이던 다임러크라이슬러가 10일 “더 이상 관심이 없다”며 물러난데 이어 11일에는 미국의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가 닛산의 신용등급을 ‘투자불가’수준으로 낮췄기 때문.

다임러크라이슬러는 닛산의 부채가 2백20억달러(약 26조8천억원)에 이른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만 고개를 흔들며 물러났다. 서구와는 달리 일본사회는 회사매각을 ‘몸을 파는 것’ 처럼 수치스럽게 생각한다. 그런데 이마저 거절당한 것이다.

닛산의 몰락요인으로 업계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사내 관료주의를 꼽는다.

닛산에서는 자동차 디자인에 관해 디자이너보다 최고경영진 입김이 훨씬 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대표 차종인 맥시마의 99년형이 80년대형과 외관상 차이가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

95년에는 닛산의 대표적인 스포츠카인 패스파인더를 생산하려는 계획이 4차례나 연기됐다. 질질 끄는 의사결정과정 때문이다.

최근 도요타 닛산 혼다 등 일본의 자동차 3사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을 대상으로 첨단 변속기어 기술을 소개했다. 도요타와 혼다는 이 자리에 2명씩의 직원을 보냈지만 닛산은 5명을 보냈다. 닛산은 설명 슬라이드운반 영사기작동 메모 등의 작업을 4명이 각각 하나씩 맡았다. 나머지 1명은 인솔자였다.

닛산의 관료주의는 ‘엘리트 주의에 사로잡힌 도쿄대학 출신이 경영진을 독점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84년까지 막강한 힘을 가졌던 노조가 경영권에까지 관여한 것도 닛산 몰락의 주요한 원인. 70년대에는 노조 지도부가 회사 중간관리자의 해외출장을 비토할 수 있을 정도였다.

강명한(姜明漢)전 삼성자동차 부사장은 “65년 정부 압력으로 프린스 후지중공업 닛산디젤 등 군소 부실기업들을 껴안은 다음부터 닛산의 몰락이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희성기자〉lee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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