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통령 방일]「痛惜」서 「痛切」로 바뀐 일본의 사과

  • 입력 1998년 10월 7일 19시 33분


“우리나라가 한반도의 여러분께 크나큰 고통을 안겨준 시대가 있었다. 그것에 대한 깊은 슬픔을 항상 본인의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아키히토(明仁)천황이 7일 일본을 국빈방문한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의 만찬에서 언급한 불행했던 양국 과거사에 대한 발언은 이전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아키히토천황은 90년 5월 노태우(盧泰愚)대통령의 일본방문 때 “우리나라에 의해 초래된 불행했던 시기에 귀국 국민이 겪었던 괴로움을 생각할 때 본인은 통석(痛惜)의 염(念)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94년 3월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일본방문 때 “우리나라가 한반도의 여러분께 크나큰 고난을 안겨준 시기가 있었다”며 “지금도 (90년 당시와) 변함없는 심정을 간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키히토천황은 다만 양국간 오랜 교류의 역사를 거론하면서 ‘역사의 진실을 추구하여 이해하려는 노력과 상대방에 대한 평가와 경애의 마음을 바탕으로 미래지향적인 양국 관계의 발전을 강조했다. 그는 특히 청소년교류 등 개인 대 개인, 즉 민간차원의 유대 강화를 강조했다.

아키히토천황의 발언으로 미뤄 8일 김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일본총리의 단독 및 확대정상회담 후 발표 예정인 공동선언문에 명문화될 한국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정부의 사과와 반성도 이 수준을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부치총리의 사과와 반성은 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당시 총리의 전후 50주년 담화내용을 답습한 것으로 ‘한국’이라는 주체를 확실히 하고 사과표현의 단어로 ‘통절(痛切)’을 사용했다는 점만 달라졌다는 전언이다.

이와 관련해 홍순영(洪淳瑛)외교통상부장관은 “불확실성의 세기인 21세기를 눈앞에 둔 지금은 단어 하나하나의 사전적 의미에 지나치게 구애받아서는 안된다”며 “얼마나 어떻게 양국 국민이 서로 마음을 열도록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일 양국 정부는 어쨌든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반성과 사과 및 그에 대한 한국의 평가를 공식문서에 명문화함으로써 과거사 논란을 일단 매듭지으려 하고 있다. 홍장관이 “한일관계는 과거에 어땠느냐 하는 것보다는 앞으로 어떤 비전으로 끌고 갈 것이냐 하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한일관계는 이제 아시아적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군대위안부문제 등 미해결 현안이 많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이같은 시도에 대해 과거사 청산이 아니라 ‘봉합’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임채청기자〉cc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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