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결정됐다』
2일 낮 12시 경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 르네상스호텔.
티모시 가이스너 미국 재무부 차관보는 「아세안+6개국」 재무장관 회의 도중 뻔질나게 회의장을 드나들며 휴대전화로 전화통화를 한 뒤 한국 정부 관계자에게 이같이 통보했다.
이 시점에 미셸 캉드쉬 IMF총재로 부터는 「지원 조건 협상은 며칠이 걸릴 것」이라는 점만 확인할 수 있었다.
IMF가 금융위기국에 외화자금을 지원하면서 내거는 조건이 누구의 이익을 반영한 것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삽화였다.
IMF는 거부권을 가진 최대이사국인 미국의 이해를 대변하는 중재자임이 이번 협상 과정에서 드러났다.
미국은 캉드쉬총재와 IMF실무협의단에 금융시장 개방 등 자금지원 조건을 추가로 요구했고 이에 따라 협상 타결이 지연됐다.
협상에 참여했던 재정경제원 고위관계자는 『1일 밤 협상이 거의 타결된 상황에서 IMF가 지금까지 언급하지 않았던 문제를 들고 나왔다』고 밝혔다.
그 전의 쟁점이었던 성장률 등 거시지표와 통화 물가정책 등 커다란 줄기는 이미 며칠 전부터 가닥이 잡혔는데 기술적 이행문서를 논의하면서 요구사항이 늘어났다는 것.
재경원 관계자는 『구체적인 시행일자까지 못박은 자본시장 개방일정을 제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이스너 차관보는 1일 콸라룸푸르에서 강만수(姜萬洙)재경원차관에게 『자본시장 개방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면서 약속한 일정보다 앞당겨야 한다』고 주문했다.
IMF를 움직이는 미국의 힘은 IMF출자금 지분에서 찾을 수 있다. 현재 IMF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지분은 18.25%로 1백86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많다. 미국은 바로 이 지분규모를 내세워 회원국 가운데 유일하게 거부권을 갖고 있다. IMF이사회의 의사결정 사항 가운데 지분 변경이나 협정의 변경 등 중요한 사안들은 총 지분의 85% 이상 찬성을 얻어야 한다. 미국이 빠질 경우 85% 지지를 얻지 못해 중요한 사안은 통과될 수 없다.
주도권과 영향력을 결정하는 지분은 회원국들이 원한다고 해서 마음대로 늘릴 수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분을 현재 0.55%에서 내년에 0.77%로 올리도록 승인받는데 10년이 걸렸다.
출자금 지분이 5.67%인 일본도 협조융자의 조건을 IMF협의단에 전달, 협상 막판에 일본의 관심사항인 한국의 수입선 다변화제도 폐지를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우진기자·콸라룸푸르〓이용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