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機 추락]사고에 꺾인 仁術-사랑의 선교

  • 입력 1997년 9월 4일 07시 32분


『내전(內戰)이 완전히 끝난 다음 돌아가시라고 권해도 듣지 않으셨어요. 자신을 기다리는 신도를 생각하면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다고 하시면서…』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선교활동을 하다 내전때문에 일시귀국했던 오형석(吳亨錫·34)목사 일가족 4명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인천 부평동부교회는 3일 밤 십자가의 빨간 불빛만이 교회마당을 비출 뿐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95년1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선교활동을 떠났던 오목사는 지난 달 부인 곽혜진(郭惠眞·34)씨와 중엽(重燁·7) 성혁(成赫·5)군 두 아들을 데리고 일시 귀국, 자신의 파송교회이자 후원교회인 이 곳에서 생활했었다. 이 교회 우강국(禹强國·37)목사는 『93년 캄보디아로 선교정탐훈련을 다녀온 오목사는 입버릇처럼 「열악한 생활환경에서 희망없이 살아가는 그들에겐 내가 필요하다」고 말할 정도로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오목사는 그 때부터 불교권인 캄보디아에서의 선교활동을 염두에 두고 척추교정술 등 전도에 도움이 되는 의료기술을 익히기 시작했다. 대구간호전문대 출신인 부인 곽씨는 그런 오목사에게 하늘이 내려준 동반자나 다름없었다. 오목사는 종종 자신을 유교문화가 지배하고 있던 구한말 우리나라에서 목숨을 걸고 선교활동을 했던 서양선교사에 비유하곤 했다. 95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일념 하나로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땅에 도착한 오목사 일가족은 현지인의 허름한 집 한채를 빌려 프놈펜장로교회를 세웠다. 무료의료봉사와 함께 선교활동을 편 지 만 2년이 지나는 동안 캄보디아 신도가 하나 둘 늘어나면서 현재 60여명에 이른다. 오목사의 눈부신 선교활동은 해외선교의 귀감으로 칭송받기도 했다. 3일 밤 초조하게 뉴스를 지켜보던 신도들은 현장에서 구조된 오목사의 막내 아들 성혁군이 끝내 숨졌다는 속보가 전해지자 참고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한편 큰 아들 내외와 손자를 한꺼번에 잃은 오목사의 아버지 오세재씨(61·대구 서구 평리4동)는 『사랑하는 아들과 손자들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며 넋을 잃은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부형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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