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日 국교정상화, 아직 『산넘어 산』

  • 입력 1997년 8월 20일 20시 11분


일본과 북한의 국교정상화 협상을 위한 북경예비회담은 지난달 북한측이 조건없이 일본인 처들의 귀향을 실현하겠다는 의사를 공식 표명함으로써 대화 물꼬가 터진 이후 정부 차원의 회담으로까지 급진전, 성사됐다. 이같은 양측의 발빠른 접촉은 무엇보다 북한이 올가을 金正日(김정일)체제의 정식 발족을 앞두고 대외관계를 유연하게 하고 식량 부족을 비롯한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성을 보여온데 있었다. 또한 일본측은 4자회담 예비회담 등에서 역할이 별로 없는데 따른 초조감을 갖고 있었던 차에 북한이 적극적으로 나오는 현시점이 정상 대화 루트를 본궤도에 올려 놓는 호기로 판단, 양측의 계산이 서로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북간 국교정상화 협상은 지난 90년 9월 일본 자민당 사회당과 북한노동당 3당간 「조건없는 조기 국교재개」 공동선언이 이뤄진 직후 본격화돼 91년 1월∼92년 11월에 8차례에 걸쳐 진행됐었다. 당시 주요 의제는 △과거 조약의 효력, 과거인식 등 기본문제 △재산권 청구권 문제 등 경제문제 △북한의 핵개발의혹, 남북대화 진전 등 국제문제 △일본인 처 등 기타문제였다. 북한은 기본문제를 다른 의제와 분리해 해결하고 우선 외교관계 개선을 서두르자는 입장을 보인 반면 일본측은 일괄 타결을 들고 나왔었다. 또 협상도중 북한의 핵개발 의혹이 불거졌으며 일본측이 국제 핵사찰에 응하도록 요구한데 대해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해결하겠다고 맞서 대화가 냉각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일본측이 87년 대한항공기 폭파범 金賢姬(김현희)의 일본어교사 李恩惠(이은혜)납치문제 해결을 강력하게 요구, 협상은 정지됐다. 따라서 앞으로의 협상에서는 우선 핵개발 의혹과 일본인 처 문제는 기존 의제에서 제외될 공산이 크지만 다른 납치의혹 사건과 마약밀수 미사일개발 문제 등이 추가돼 국교정상화에 도달하기까지는 쉽지 않다. 이와 관련, 일본국제문제연구소 구라타 히데야(倉田秀也)연구원은 『현재 4자회담이 조금씩 진전되고 있는 만큼 일―북이 이에 앞서나가지는 못할 것』이라며 『일본인 처 귀향 실현 이후 예상되는 대북 식량지원도 소규모 간접방식을 취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한은 국교정상화에 따른 전후 배상금 문제 해결 등을 통해 경제난을 타개해보겠다는 뜻도 갖고 있지만 협상 타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첩첩이 남아있다. 〈동경〓윤상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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