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機 참사/韓-美 구난시스템]「괌」전문가만 투입

  • 입력 1997년 8월 7일 19시 58분


생존승객 긴급 후송
생존승객 긴급 후송
괌에서 대한항공 801편 추락사고가 발생했을 때 현지 당국이 취한 구출작업과 여러가지 조치는 국내에서 대형사고가 발생했을 때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괌주둔 미군과 괌정부가 책임지고 있는 이번 구출작전의 가장 큰 특징은 철저한 전문가 위주의 구출작전. 추락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이 비행기에 친척들이 탔던 괌교포들이 구출작업에 참여하기 위해 현장에 달려갔지만 미군당국은 일찌감치 이 교포들이 「구출전문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고현장에 접근하는 것을 봉쇄했다. 대신 훈련받은 소방서구급대원과 군인들만 구출작업에 참여했다. 그러나 생존자들이 사고 당시의 쇼크로 말을 계속 시키지 않으면 정신을 잃을 우려가 발생하자 그때서야 상담자격을 갖춘 교포들을 수소문해 말동무용으로 현장에 투입시켰다. 실제 구출작업도 수학공식처럼 정해진 원칙에서 벗어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구출순위에서 중상자 어린이 여자 우선으로 한다는 원칙이 거의 지켜졌다. 이 때문에 일부 부상정도가 경미한 생존자들은 사고현장에서 몇시간동안 「방치」되기도 했다. 목포비행장에 아시아나기가 추락했을 때 마구잡이식 구조작전으로 멀쩡한 생존자가 척추장애인이 되기도 했던 국내 구출작업과는 대조적이었다. 사고현장과 생존자가 입원한 병원에 대해 철저히 「언론통제」를 했던 점도 눈에 띄는 대목. 괌주둔 미군기지사령관으로 지휘권을 일원화시킨 사고대책반은 구조작업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수백명의 취재진들의 아우성에도 불구하고 사고현장 반경 2마일 주위를 봉쇄했다. 또 생존자들의 안정을 해친다는 이유로 아침 일찍부터 취재진들의 병원출입을 막았다. 그렇다고 해서 취재를 완전히 봉쇄하지는 않았다. 생존자구출작업과 시체수습작업이 어느정도 마무리된 오후5시경 취재진의 현장접근을 허용하면서 현장에서 3백여m 떨어진 한곳에 집결시켜 30분 동안만 지켜보도록 했다. 또 취재진이 현장에서 빠져나온 직후 괌지사와 해군제독은 기자회견을 통해 상황을 브리핑하는 등 「책임과 성의」를 보였다. 삼풍사고 당시 언론의 과열취재경쟁으로 자극적이고 끔찍한 장면이 그대로 안방에 방송되고 언론의 기본속성이기도 한 취재경쟁을 적절히 조정하지 못해 구조작업에까지 적잖은 지장을 빚었던 국내상황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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