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의 고도 경제성장신화가 무너지고 있다.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아시아 4마리 용」에 이어 연평균 10% 내외의 높은 성장을 구가하던 이들 국가의 경제위기는 최근 발생한 통화위기로 극명하게 드러났다. 동남아 고도성장의 비결은 낮은 임금과 외국자본 유치를 바탕으로 한 수출지향적 성장정책. 그러나 최근 중국 베트남 등 사회주의국가들이 시장경제를 도입, 경쟁국으로 떠오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태국은 섬유 의류 전자 잡화 등의 수출에 주력하면서 86년부터 95년까지 연평균 9.3%의 성장을 했다. 그러나 저임금에만 의존, 산업구조개혁을 소홀히 하는 바람에 초저임을 무기로 등장한 중국 등에 밀리면서 경제위기를 맞게 됐다.
태국은 올해초 7.1% 성장을 예상했으나 최근 4.8%로 수정했다. 경제의 활력을 잃으면서 금융기관의 대외신뢰도가 땅에 떨어졌고 외국자본도 철수, 외환위기로 이어져 최근의 바트화 폭락사태까지 빚어졌다.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주변국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상황. 마치 지난 94,95년 멕시코 외환위기가 동남아로 옮겨온 형국이다.
외환은행 외환분석실의 김희동차장은 『경제활력의 쇠퇴로 실질통화가치와 명목환율 사이에 격차가 커짐에 따라 환투기가 발생한것』이라면서 『동남아의 위기가 환투기때문이라는 견해는 원인과 결과를 거꾸로 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통화위기 해소여부는 성장능력의 회복여부에 달려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수출. 일단 자국화폐의 평가절하가 이뤄진 만큼 상품의 가격경쟁력이 그만큼 회복돼 수출이 활기를 띨 전망이다. 하지만 평가절하로 외채상환부담은 더 커지게 됐고 원재료 및 부품수입가격 상승도 단기적으로는 평가절하의 효과를 잠식하게 된다.
한국은행 해외조사실 박정용과장은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동남아 국가들이 외국자본을 붙잡아두기 위해 강도높은 고금리정책을 고수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태국의 경우 환율절하와 함께 중앙은행 재할인율을 연 10.5%에서 12.5%로 올렸다. 이처럼 높은 자본이익을 보장하는 고금리 정책은 당장 외환을 유인하는 효과는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기업의 금융비용부담을 증가시켜 경쟁력을 떨어뜨리게 된다. 결국 동남아 경제회복의 또다른 관건은 정부와 중앙은행이 얼마나 시장 원리에 맞게 대응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대응을 잘 하더라도 과거와 같은 두자리 성장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