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집회 불가, 차량유세 금지, 정치광고도 안됨」.
오는 29일 총선을 앞두고 있는 인도네시아에선 그동안 빈축을 사온 이같은 「인도네시아식 민주주의」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일정 규모이상의 집회는 당국의 사전허가가 필요하나 집회허가를 얻기 어려운 야당은 골목을 누비며 「맨투맨」식 선거운동을 펼칠 수밖에 없다. 야당은 「불법적인」 대규모 집회를 감행하기도 하지만 수백명씩 목숨을 잃는 유혈사태만 야기할 뿐 한번도 선거에서 이기지 못했다.
수하르토대통령이 31년간 권좌에 앉아 있을 수 있는 것도, 여당인 골카르당이 지난 71년부터 모든 총선에서 「백전백승」의 개가를 올린 것도 이같은 선거덕분.
야당을 「들러리」로 세운 채 여당은 돈 조직 언론을 모두 거머쥐고 「땅짚고 헤엄치는」 선거를 치러왔다.
게다가 이번 선거에는 대중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야당지도자 메가와티 수카르노 푸트리의 출마까지 금지되자 참다못한 유권자들은 유일한 「합법적인 투쟁방법」인 투표거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어차피 집권여당의 승리가 뻔하므로 투표율이나마 최소한으로 낮춰 찬물을 끼얹겠다는 뜻이다.
선거마다 90%이상의 높은 투표율을 정권에 대한 지지라며 자랑해 온 수하르토대통령은 최근 자바에서 「투표를 보이콧하자」는 익명의 전단이 대량 살포되는 등 심상치 않은 조짐이 나타나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는 당 부총재인 장녀 하르디얀티에게 투표율을 높이라는 특명을 내리는 한편 『투표를 하고 안하고는 개인 자유지만 투표거부를 부추기는 자는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서 그나마 합법적인 저항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강수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