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메카 대화재 2,300명 사상

  • 입력 1997년 4월 17일 08시 23분


전세계에서 2백여만명의 이슬람교 순례자들이 운집한 사우디아라비아 메카 외곽 야영지에서 15일 큰 불이 나 2천3백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대참극이 발생했다. 사우디민방위국 국장은 2천명 이상의 순례자가 부상했다고 밝혔으며 목격자들은 다수의 압사자들을 포함, 사망자가 최소한 3백명이 넘는다고 말했다. 5시간 가량 계속된 이 불로 25㎢에 이르는 야영지에 빽빽이 설치된 7만여개의 천막은 모두 소실됐으며 번지는 불길을 피해 순례자들이 이리저리 대피하는 과정에서 압사자가 많이 발생했다. ○…야영지는 국가별로 구분돼 있었는데 파키스탄인의 한 천막에서 정오직전 처음 일어난 불은 섭씨 40도의 메마른 기후 속에 때마침 불어닥친 강풍을 타고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삽시간에 천막촌 전체로 번졌다. 정확한 화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점심을 준비하던 간이 가스조리기구의 불이 천막에 옮겨붙으면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희생자들은 주로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에서 온 노인들로 알려졌다. 성지 순례는 이슬람교도의 의무중 하나이기 때문에 순례자의 행렬에는 죽기 전에 성지 순례의 의무를 다하려는 노인들이 많은 것이 특징. 인도에서 온 한 순례자는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이리저리 뛰어다녔으며 이 과정에서 힘없는 노인들이 넘어져 압사자가 많이 나왔다』고 사고 당시를 설명. ○…이번 참사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천막시설과 관리 때문에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었던 예고된 사고라는 지적. 매년 순례시즌엔 메카에는 수십여개국에서 2백여만명의 이슬람교도가 모여들어 야영지에서 천막생활을 하고 순례자들의 언어도 제각각이라 효율적인 관리가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 때문에 지난 90년엔 순례용 터널에서 1천4백여명이 질식사하는 등 80년이후 이번 사고까지 합해 일곱번의 대형참사가 일어났다. ○…불이 나자 사우디 당국은 헬기와 소방차를 동원해 진화에 나서는 한편 메카에 있는 모든 병원에 비상동원령을 내렸으며 거처를 잃은 순례자들을 평원 외곽에 급조한 1만여동의 천막에 분산수용. ▼ 메카순례 참사일지 △79년12월〓수니파 메카대사원에서 경찰과 총격전, 75명 사망. △80년8월〓파키스탄 수송기 지다공항 비상착륙, 3백1명 사망. △87년7월〓반미 이란순례자 경찰과 충돌, 1천51명사상. △89년7월〓폭탄테러로 메카순례자 17명사상. △90년7월〓메카 순례용 터널에서 외국인순례자 1천4백26명 질식사. △91년3월〓메카참배 세네갈 이슬람교군 92명 수송기 폭발로 사망. △94년5월〓인도네시아순례자 2백70명 메카에서 압사. ▼ 성지순례 「하지」란 15일 대참사가 발생한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는 메디나 예루살렘과 더불어 전세계 10억 이슬람교도들이 생전에 꼭한번 순례하기를 소원하는 이슬람 3대 성지중 한곳으로 이슬람교 창시자 마호메트가 출생한 성지. 순례를 위해 이곳을 찾다 각종사고로 목숨을 잃은 이슬람교도들은 지난 79년이래 3천여명에 달한다. 세계 1백여개국의 이슬람교도들이 이같은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이곳을 찾는 것은 성지순례가 생전에 지켜야할 이슬람교 다섯가지 덕목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순례도중 사망하면 즉각 천국에 간다」는 믿음도 이들의 순례행을 부채질한다. 「하지」라 불리는 순례에 참석한 이슬람교도들은 메카의 카바라라는 건물을 일곱번 돌고 사파와 마르와라는 두기둥사이를 일곱번 왕복해야 한다. 이와 함께 메카에서 20㎞정도 떨어진 아라파트 분지에서 집회와 개인기도 시간을 갖는데 이때가 바로 「하지」의 절정으로 이번 참사를 당한 순례자들도 16일 열리는 이 집회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사후세계를 믿는 교도들은 현세의 죄를 씻는 일이 목숨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조운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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