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소평 弔辭」 中지식층 반응]

  • 입력 1997년 2월 26일 20시 15분


[파리〓김상영특파원] 『언급하지 않은 부분은 많이 있지만 적어도 거짓말을 섞지는 않았다』 鄧小平(등소평)의 장례식 조사에 대한 중국 지식인들의 반응을 요약한 프랑스 언론들의 보도내용이다. 오로지 찬사로 가득찼던 지난 76년 毛澤東(모택동) 장례식 조사와는 여러모로 대비된다는 것이다. 『대체로 만족할 만하다. 긍정적인 면모에 대해서는 지루할 정도로 나열했지만 내세우기 곤란한 부분은 아예 삭제했다. 이점이 모택동 장례식 때와는 다른 점이다』는 한 중국 지식인의 말이 이같은 평가를 대변한다. 가장 주목을 끄는 대목은 등의 최대 실책으로 꼽히는 89년 천안문 사태에 대한 언급 부분. 이에 대해 조사는 『89년 정치적 곤경에 처했을 때 등과 그의 노혁명동지들은 당과 정부가 취한 결연한 조치에 확고한 지지를 표명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등이 군의 무력 진압을 지시했음을 시인한 대목이라는 평가다. 조사는 그러나 76년4월 周恩來(주은래) 추도식 때의 시위에 대해서는 『주은래의 죽음을 애도하고 4인방에 저항하며 등을 지지하기 위한 군중시위』로 규정,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당시 이 시위는 반혁명으로 낙인찍혀 등이 실각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57년 등이 당총서기 자격으로 벌인 「반(反)우파분자 캠페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 캠페인은 수만명의 지식인을 죽음과 감옥으로 내몰았다. 79년 베트남 침공에 대해서도 조사는 침묵하고 있다. 주변국과의 관계를 의식하고 이 전쟁으로 피해를 본 군의 상처를 다시 건드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한 중국 지식인은 조사가 침묵한 부분에 대해 중국 속담을 인용했다. 『선행(善行)은 1천년간 기억되기 어렵지만 악행(惡行)은 1만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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