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니까, 더우니까 신는다… 여름 필수품 된 ‘젤리슈즈’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6월 24일 00시 30분


‘발레코어’-복고 아이템으로 주목
에르메스 등 명품도 잇따라 출시
삼성물산 구호, 젤리슈즈 첫 출시
한섬, 신발 종류-물량 배 이상 늘려

그물처럼 짜인 반투명한 플라스틱 구멍 사이로 발등이 비친다. 알록달록한 색감에 말랑한 질감, 비에 젖어도 금세 마르는 이 신발은 2000년대 초반 동네 시장 돗자리 위를 색색으로 수놓았던 추억의 ‘젤리슈즈’다.

한동안 유행 뒤편으로 사라졌던 젤리슈즈가 올여름 다시 패션가의 주목을 받고 있다. Y2K(2000년대 전후) 감성과 발레코어(발레복을 일상 패션에 접목) 트렌드가 확산된 데다, 폭염과 장마가 반복되는 ‘하이브리드형’ 날씨가 실용적인 신발 수요를 크게 끌어올려서다. 글로벌 명품 브랜드와 국내 패션 대기업들이 과거의 투박함을 없앤 신제품을 앞다퉈 출시하면서, 젤리슈즈가 전천후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고 있다.

● 런웨이 패션 아이템으로 떠오른 젤리슈즈

국내 패션 브랜드들이 여름철을 맞아 다양한 날씨에 활용할 수 있는 젤리슈즈 제품군을 확대하고 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전개하는 브랜드 ‘토리버치’의 ‘멜로우 메리제인 젤리’. 각 사 제공
국내 패션 브랜드들이 여름철을 맞아 다양한 날씨에 활용할 수 있는 젤리슈즈 제품군을 확대하고 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전개하는 브랜드 ‘토리버치’의 ‘멜로우 메리제인 젤리’. 각 사 제공
젤리슈즈는 폴리염화비닐(PVC) 등 플라스틱 소재로 만든 신발이다. 1980년 전후로는 각종 전문 브랜드가 등장하며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1979년 브라질에서 탄생한 브랜드 ‘멜리사’가 대표적이며, 젤리슈즈란 명칭도 1980년 프랑스에서 설립된 동명의 브랜드에서 유래했다. 국내에서는 2000년대 초반 알록달록한 젤리슈즈가 여름철 필수품으로 인기를 끌었다.

한동안 비 오는 날 기능성 신발 정도로 소비되던 젤리슈즈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건 2017년 무렵이다. 당시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가 국내 매장에 34만 원 상당의 젤리슈즈 ‘누드’를 선보이면서다. 가죽 명가로 알려진 에르메스가 플라스틱 소재 신발을 처음 출시했다는 화제성이 맞물려 국내에서는 품절 대란이 일어났다.

최근에는 주요 럭셔리 브랜드의 런웨이로 이어지며 트렌드로 안착하고 있다. 특히 ‘Z세대의 에르메스’라 불리는 북미 명품 브랜드 ‘더 로우’가 2024년 프리폴 컬렉션에서 다양한 디자인의 젤리슈즈를 선보였다. 올 시즌 봄·여름(S/S) 컬렉션에는 끌로에, 보테가 베네타, 로에베 등의 브랜드들도 가세했다. 고전적인 격자무늬 디자인은 물론이고 반투명 플라스틱 재질을 활용해 신데렐라 유리구두처럼 연출한 스타일까지 나오고 있다.

● 국내 패션 대기업도 젤리슈즈 제품군 확대

국내 패션 대기업들도 올해 젤리슈즈 제품군을 강화하며 여름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을 통해 판매되는 미국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토리버치’는 올해 여름 대표 신발로 ‘멜로우 메리제인 젤리’를 내세웠다. 반투명 폴리우레탄 소재로 제작된 이 제품은 뒤축이 없는 뮬 형태로 디자인됐다. 여기에 발등을 지나는 스트랩과 토리버치의 상징인 더블 T 로고 장식을 더했다. 지난해 국내에서 첫선을 보인 이 제품의 올해 1∼5월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85% 늘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여성복 브랜드 ‘구호’는 올해 처음으로 젤리슈즈 제품군을 내놨다. 대표 제품인 ‘젤리 메리제인’은 출시 후 한 달도 되지 않아 판매율 80%를 넘겼다. 글로벌 브랜드와의 협업 상품도 잇따르고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 기반 패션 브랜드 ‘가니’는 최근 멜리사와 협업한 컬렉션을 선보였다. SSF샵에서는 4∼5월 두 달간 ‘젤리슈즈’ 관련 키워드 검색량도 전년 동기 대비 114% 늘었다. 통상 한여름 성수기에 집중되던 젤리슈즈 수요가 초여름부터 본격화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패션 브랜드들이 여름철을 맞아 다양한 날씨에 활용할 수 있는 젤리슈즈 제품군을 확대하고 있다. 코오롱인더스트리FnC부문 슈콤마보니의 ‘젤리 플랫’. 각 사 제공
국내 패션 브랜드들이 여름철을 맞아 다양한 날씨에 활용할 수 있는 젤리슈즈 제품군을 확대하고 있다. 코오롱인더스트리FnC부문 슈콤마보니의 ‘젤리 플랫’. 각 사 제공
코오롱인더스트리FnC부문의 컨템퍼러리 슈즈 브랜드 ‘슈콤마보니’ 역시 26 S/S 시즌을 겨냥해 젤리슈즈 2종을 출시했다. ‘젤리 플랫’은 구멍이 송송 뚫린 무늬에 큐빅 장식을 더한 납작한 플랫슈즈 스타일이며, ‘플로피 젤리 샌들’은 입체적인 꽃장식에 밑창이 두툼한 플랫폼 솔을 적용한 제품이다. 이들 제품군의 6월 첫째 주 기준 판매량은 4주 전 대비 약 4배 가까이 늘었다.

국내 패션 브랜드들이 여름철을 맞아 다양한 날씨에 활용할 수 있는 젤리슈즈 제품군을 확대하고 있다. 한섬 마인의 ‘파베 크리스탈 글리터 젤리 슈즈’. 각 사 제공
국내 패션 브랜드들이 여름철을 맞아 다양한 날씨에 활용할 수 있는 젤리슈즈 제품군을 확대하고 있다. 한섬 마인의 ‘파베 크리스탈 글리터 젤리 슈즈’. 각 사 제공
현대백화점그룹 계열 패션전문기업 한섬은 올해 S/S시즌 슈즈 제품군을 확장하면서 젤리슈즈를 핵심 상품으로 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품목 수를 전년 대비 3배 늘렸으며, 전체 생산 물량도 280% 확대했다. 특히 잡화 브랜드 ‘루즈앤라운지’의 경우 품목 수는 전년 대비 2배, 물량은 5배 늘렸다. 강현주 한섬 슈즈디자인실장은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이 다양해지면서 가벼움과 실용성을 갖춘 젤리슈즈가 최근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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