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을 지휘하는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장관은 ‘아이스 바비’란 별명을 갖고 있다. 바비 인형처럼 ‘풀 메이크업’을 하고 화려한 복장으로 ICE의 불법 이민자 단속 현장에 나타나 사진 찍히는 걸 즐기기 때문이다. 지난해 엘살바도르에 있는 테러범 수용소까지 방문해선 문신 가득한 죄수들을 배경 삼아 영상을 찍기도 했다. 영상에서 놈은 불법 이민자들도 이런 신세가 될 거라고 경고했는데 더 주목을 끈 건 반짝이던 그의 7500만 원짜리 롤렉스 손목시계였다.
▷놈은 장관 임명 전부터 구설에 자주 올랐다. “두 살 손녀도 엽총을 갖고 있다”고 말할 정도로 총기 옹호론자인 그는 반려견이 거칠다는 이유로, 기르던 염소가 냄새를 풍긴다는 이유로 총으로 쏴 죽였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불법 이민에는 누구보다 강경해서 사우스다코타 주지사 시절 텍사스 국경 봉쇄를 위해 주 방위군을 5차례 파견했다.
▷놈은 ‘반(反)이민’ 선봉에 섰지만 선을 넘는 일이 잦았다. ICE가 조지아주 현대차 공장을 급습해 한국인 근로자 다수를 구금했을 때도 놈은 “법대로 추방할 것”이라며 사태를 키웠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비즈니스도 생각해야지, 머리를 쓰라”며 놈에게 한마디했다고 한다. 놈이 악명 높은 국경순찰대 간부를 발탁해 이민 단속 작전을 맡긴 것도 실책이었다. 작전이 벌어질 때마다 유혈 진압이 자행됐고 급기야 미니애폴리스에서 시민 2명이 ICE 총에 맞아 사망했다. 놈은 그 두 사람이 테러리스트라면서 여론에 불을 질러 트럼프를 곤혹스럽게 했다.
▷트럼프는 5일 놈을 경질했다. 이란에 대한 군사 공격으로 보복 테러 우려가 고조되는 가운데 국토안보부 장관을 해임한 배경을 두고 해석이 다양하다. 전쟁으로 지지도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무차별적인 이민자 단속을 지속하는 게 부담스러웠을 수 있다. 하지만 놈 못지않게 불법 이민에 강경한 종합격투기 선수 출신 상원의원을 후임으로 지명한 걸 보면 그걸론 설명이 충분치 않다.
▷놈이 보좌관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으며 공금으로 호화 전용기를 타고 다니고, 직원들에게 갑질을 했다는 것도 공(公)과 사(私)의 경계가 흐린 트럼프의 윤리 기준을 고려할 때 해임 사유가 되긴 어려워 보인다. 놈이 이민 정책을 홍보한다면서 TV 광고에 3300억 원의 예산을 쓴 게 유력한 원인으로 거론된다. 정책보단 말을 탄 자신을 주인공으로 부각시켜 “셀프 홍보용”이란 비판이 거세다. 놈은 3일 의회 청문회에서 그런 광고에 왜 막대한 예산을 썼느냐고 추궁을 받자 트럼프가 승인했다고 해명했다. 트럼프는 “전혀 몰랐다”며 펄쩍 뛰었다. 트럼프로선 놈의 책임 떠넘기기가 괘씸하기도 했겠지만, 자기 홍보에 열을 올리는 행태가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보스의 스포트라이트를 가로챈 죄’에 해당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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