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 다시 ‘청와대정부’는 반대다(1)

  • 동아일보

대통령실이 청와대 순차 이전을 진행 중인 18일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직원이 탈부착 업무표장을 설치하고 있다. 뉴스1
대통령실이 청와대 순차 이전을 진행 중인 18일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직원이 탈부착 업무표장을 설치하고 있다. 뉴스1
‘다시 청와대로’란 제목의 사진이 22일 동아일보 1면에 실렸다. 기자회견이나 대변인 브리핑이 열리는 춘추관을 점검하는 모습이다.

대통령마다 청와대를 나오겠다던 시절이 있었다. “공간이 의식을 결정한다”던 전임 대통령 윤석열이 구중궁궐 청와대 아닌 시내 한복판 용산에서 친위 쿠데타를 자행하다 실패했다는 건 웃기는 비극이다.

불통의 상징 청와대로 복귀해도 이재명 대통령은 3실장(비서실장·정책실장·국가안보실장)과 수시 대면회의를 할 수 있게 집무실을 한 건물에 둔다고 강조했다. 그만큼 소통을 중시한다는 의미겠으나 되레 걱정스럽다. 대통령 보좌기능에 그쳐야 할 대통령비서실이 자기네들끼리만 너무나 소통을 잘한 나머지, 내각 꼭대기에 올라앉아 ‘청와대정부’로 군림한 문재인 정권을 따라할까 봐서다.

강훈식 비서실장, 대통령에게 “NO” 못하나

2021년 10월 26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오른쪽)가 청와대 상춘재 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시기라 마스크를 썼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21년 10월 26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오른쪽)가 청와대 상춘재 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시기라 마스크를 썼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더불어민주당이 23일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법안을 강행처리했다. 막판까지 수정했다지만 이미 벌어진 사건을 전담할 재판부를 사후에 만든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위헌 소지가 해소될 수 없는 법안이다. 그럼에도 이달 초 열린 ‘이재명 정부 6개월 성과 보고 기자간담회’에서 우상호 정무수석은 “위헌 소지를 최소화하는 범위 내에서 추진하자는 공감대가 대통령실과 여당 간에 형성돼 있다”고 밝혔다(“최소화”라는 건 이미 위헌임을 인지한다는 의미가 아닐 수 없다).

여권과 개딸을 제외한 거의 모든 이들이 위헌 소지를 지적하면, 대통령실 누군가는 아니 적어도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은 대통령에게 “안 됩니다” 말해야 했다. 최고지도자에게 “NO” 해야만하는 공적 직업이 언론이고, 대통령비서실장이며, 사적으로는 대통령 부인이 있다(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김건희는 제외하자).

여당이 하겠다는데 대통령실이 어쩌겠느냐고 변명하고 싶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상호는 분명 “대통령실과 여당 간 공감대가 있다”고 했다. 이 대통령도 9월 “내란특별재판부가 무슨 위헌이냐”고 말한 바 있다. 그런 대통령 생각이 잘못됐음을 대통령비서실은 말했어야 했다.

강훈식 비서실장이 19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금융위원회·공정거래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을 바라보고 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강훈식 비서실장이 19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금융위원회·공정거래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을 바라보고 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애초 이 대통령이 어려워함직한 사람 하나 없이 52세의 비서실장부터 임명해서는, 입안의 혀같은 성남라인에다 대장동 사건 등 변호인 중심으로 대통령실을 짠 것이 계획적 아닌가 싶다. 정부여당이 위헌 소지를 우습게 보듯, 대통령실 역시 법과 제도를 가볍게 보면서 대통령만 떠받드는 모습이다.

대통령 앞서 비서실장이 “검토” 지시하다니

그렇다고 대통령실이 대통령을 따르는 것도 아니다. 12일 부처 업무보고에선 신기한 ‘우연’ 또는 사고가 발생했다. 쿠팡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해 이 대통령이 “피해자가 3400만 명이 넘는데 일일이 소송을 안 하면 (피해 보상을) 안 해주는 것 아니냐”며 집단소송제 도입과 징벌적 과징금 시행령 수정을 지시한 것만 보면, 아무 문제 없다. 그런데 어쩌랴. 이미 11일 전에 강훈식이 비슷한 지시를 내려버린 걸.

쿠팡 사태 직후인 1일, 강훈식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사실상 작동하지 않고 있는 현실은 대규모 유출 사고를 막는 데 한계가 있다”며 개선 방안을 검토하라고 사실상 대통령같은 발언을 했다. 거의 전 국민에게 영향을 미친 이 중차대한 사태에서 일국의 대통령이 비서실장에게 밀린 셈이다.

3선 의원을 지낸 강훈식의 똘똘함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잘났어도 비서는 비서일 뿐이다. 정부 조직법 14조는 ‘대통령의 직무를 보좌하기 위하여 대통령비서실을 둔다’고 돼 있다. 대통령비서실 직제 제3조는 ‘대통령비서실장은 대통령의 명을 받아 대통령비서실의 사무를 처리하고, 소속 공무원을 지휘·감독한다’고 못박아뒀다.

환관이 내각 머리꼭대기에 올라앉으면

강훈식 비서실장(가운데)이 지난달 9일 서울 종로구 국무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 앞서 김민석(왼쪽) 국무총리,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팔짱을 끼고 있다. 뉴시스
강훈식 비서실장(가운데)이 지난달 9일 서울 종로구 국무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 앞서 김민석(왼쪽) 국무총리,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팔짱을 끼고 있다. 뉴시스
법대로 치면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명을 받지 않은 이상, 내각에 지시하는 시건방을 떨 수 없다. 대통령실에서 굳이 내부회의를 브리핑하겠다면 “이 대통령은 관련 부처에 개선 방안 검토 지시를 내렸다고 대통령비서실장이 밝혔다”고 했어야 온당하다.

아직 대통령 지시가 없었다면? 강훈식 자신이 잘난 척 지시했다고 브리핑하게 놔둘 일이 아니다. 대통령에게 대책 마련 지시를 조용히 건의하는 게 올바른 보좌라고 본다.

대통령참모가 내각 꼭대기에 올라앉아 대통령보다 앞서갔다고 일이 잘 돌아가면 또 모른다. 부처에선 귓등으로도 안 들은 눈치다. 그러니 12일 개선 방안 보고가 나오기는커녕 대통령의 똑같은 지시가 생중계되는 사태가 벌어졌던 것이다.

실장 한 마디에 평가원장 사임까지

오승걸 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지난달 13일 정부세종청사 교육부에서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운영 상황을 설명하기 전 인사하고 있다. 세종=뉴스1
오승걸 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지난달 13일 정부세종청사 교육부에서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운영 상황을 설명하기 전 인사하고 있다. 세종=뉴스1
그럼에도 대통령실은 문제의식을 못 느끼는 모양이다. 22일 안귀령 부대변인은 또 희한한 서면브리핑을 했다. “강훈식 비서실장은 정부 업무보고에 대해 (중략) 국민주권정부 실현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고 평가했다”며 “각 부처와 공공기관에 대해 내년도 업무계획이 차질 없이 집행될 수 있도록 주요 정책의 세부 추진계획을 면밀히 마련하고, 필요한 준비작업을 서둘러 진행할 것을 당부했다”는 거다! 비서실장이 비서실 업무보고를 평가한 게 아니라 장관들의 부처 업무보고를 평가했다고? 대체 왜?? 무슨 권한으로???

심지어 “강 비서실장은 보건복지부, 성평등가족부,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와 저출산고령화위원회 등 관련부처와 유관기관에 대해 중증장애인과 중증환자 간병 부담을 가정과 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근본적인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는 브리핑이다. 정부조직법에 따르면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명을 받아 각 중앙행정기관의 장을 지휘·감독하고, 기획재정부 장관이 부총리를 겸하게 돼 있다. 그럼 강훈식은 총리란 말인가? 아니면 총리급 비서실장??

강훈식이 말 한마디로 사람을 날리는 놀라운 신공을 보이긴 했다. 수능 ‘불(火)영어’ 지적 이틀 만에 오승걸 교육과정평가원장이 사퇴한 것이다. 8일 그는 “수능 영어 난이도 조절 실패로 수험생과학부모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며 교육과정평가원과 교육부에 책임 있는 대책 마련을 요청했다. 그러자 10일 오승걸이 책임지고 사의를 밝혀버렸다(실세 부속실장 김현지 들으라고 강훈식이 책임을 물은 거라면, 당신이 이겼다).

이번 비서실장은 대통령급이란 말인가

이재명 대통령이 비상계엄 1년을 맞은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빛의 혁명 1주년, 대국민 특별성명’을 발표한 뒤 출입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을 강훈식 비서실장(왼쪽)이 옆에서 보며 웃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이 비상계엄 1년을 맞은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빛의 혁명 1주년, 대국민 특별성명’을 발표한 뒤 출입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을 강훈식 비서실장(왼쪽)이 옆에서 보며 웃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전임 이규민 평가원장은 윤석열의 ‘킬러 문항 배제’ 지시를 어기고 수능 모의평가를 냈다는 이유로 사실상 경질됐었다. 이쯤 되면 이 정부에선 대통령비서실장이 거의 대통령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판이다(명예훼손 아닙니다요^^;).

이 대통령 지지율이 높아 비서실장이 저러는지 모른다. 이 대통령이 강조한 대전·충남 신속 통합 급물살 때문일 수도 있다. 첫 통합시장에 강훈식 차출설이 요란하다. 하지만 지방선거 공천은 당에서 하는 게 맞다. 이 정부가 탄핵당한 보수정당 출신 대통령들을 따라한다면, 별꼴이 반쪽이다.

이번처럼 대통령비서실장이 들썩이지 않았어도 대통령 탄핵과 새 정부 출범 1년 만에 치러진 2018년 지방선거는 여당 압승이었다. 당시 대통령 문재인은 “청와대 모두와 내각이 잘해준 덕분”이라면서 국민 지지에 답하지 못하면 금세 실망으로 바뀐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강조한 비서실 덕목이 유능함과 도덕성, 겸손한 태도였다.

그래서 묻고 싶은 것이다. 이름도 거룩한 ‘국민주권정부’의 대통령실은 과연 유능하고 도덕적이고 겸손한가. (27일 다시 ‘청와대정부’는 반대다(2)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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