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현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교수
15∼34세 젊은 부인암 최근 증가
생식기관 모두 제거가 수술 원칙… 완치율은 높지만 아이는 못 가져
출산 계획 있는 20∼30대 여성 환자
1기-낮은 공격성 등 조건 충족하면, 자궁과 난소 기능 유지해 임신 가능
환자 의지-의사와의 소통 매우 중요
김주현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젊은 부인암 환자의 경우 암이 1기이고 공격성이 약하면 자궁과 난소를 제거하지 않고 가임력을 유지하는 치료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다만 그 밖에도 필요한 조건이 암마다 다르기 때문에 의사와 환자가 충분히 소통하며 치료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자궁, 난소 같은 여성 생식 기관에 발생하는 암을 부인암이라고 한다. 자궁 입구에 해당하는 자궁 경부에 발생하는 자궁경부암, 자궁 몸통 안쪽 내막에 생기는 자궁내막암, 자궁 양쪽 난소에 생기는 난소암이 대표적이다.
부인암에 걸리면 ‘원칙적으로’ 자궁과 난소를 모두 제거한다. 1기에 발견해 수술한다면 5년 생존율은 최대 95%다. 다만 향후 임신은 불가능해진다. 출산 계획이 있는 젊은 여성에게는 청천벽력 그 자체다.
부인암에 걸리면 모두 자궁과 난소를 제거해야 할까. 임신은 영영 불가능한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김주현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젊은 부인암 환자의 경우 암을 없애는 것뿐 아니라 임신과 출산이 가능하도록 가임력을 보존하는 데도 집중한다. 여건이 맞고 치료가 잘 돼 두 가지 목적을 모두 달성하는 환자도 많다”고 말했다.
● 젊은 부인암 증가, 비만도 큰 원인
최근 ‘젊은 부인암’ 환자가 늘고 있다. 국가암등록통계(2022년)에 따르면 국내 여성의 암 발생 상위 3가지는 유방암 갑상샘암 대장암 순이다. 자궁경부암은 8위, 난소암은 9위다. 하지만 15∼34세로 국한하면 자궁경부암이 4위, 난소암이 5위로 껑충 뛸 만큼 젊은 부인암 환자가 많다. 김 교수는 “비만과 서구화된 식습관이 젊은 부인암 증가의 공통된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부인암에 따라 환자 증가의 구체적 이유는 약간씩 다르다.
자궁경부암은 인유두종 바이러스(HPV) 감염이 원인이다. 백신 접종 여성이 늘고 정부의 무료 자궁경부암 검진이 시행되면서 증가세가 꺾였다. 그런데도 20대에서 증가하는 것은 검진을 기피하는 젊은 여성이 많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김 교수는 “검진을 받으면 자궁경부암 전 단계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국가 검진을 받는 비율은 60%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궁경부암은 성생활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여성의 성생활 연령대가 과거보다 젊어진 점도 젊은 자궁경부암 환자가 증가하는 원인이다.
자궁내막암은 가장 꾸준히 증가하는 부인암이다. 김 교수는 “결혼하지 않아 아이를 낳지 않거나 출산을 늦게 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임신하면 태반에서 프로게스테론이란 호르몬이 분비돼 자궁내막 세포가 지나치게 증식되는 것을 막는다. 그 결과 암 발병 위험이 떨어지는 건데, 임신하지 않기 때문에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는 것. 실제로 임신했을 때 자궁내막암 위험이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
난소암은 보통 폐경 이후에 많이 발생한다. 그 경우 상피성 난소암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20대와 30대는 이와 달리 생식세포 종양이나 경계성 난소종양일 때가 더 많다. 이런 유형은 상피성 난소암보다 치료 효과가 좋아 조기에 발견하는 게 중요하다.
임신은 자궁내막암뿐 아니라 난소암 위험도 줄인다. 잦은 배란이 난소의 상피세포를 다치게 하고 이게 누적돼 난소암이 된다. 임신하면 배란이 일어나지 않아 난소가 휴식을 취할 수 있어 암 위험이 줄어드는 것이다.
● 암의 신호 잘 찾아내야
20대 중반 여성 박미현 씨(가명)는 한동안 무(無)월경 상태였다. 하지만 걱정보다는 생리가 없어 편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친구와 병원에 갔다가 예기치 않게 자궁 검사를 받았고 자궁내막암 진단을 받았다.
박 씨는 비혼주의자였다. 출산 계획이 없다며 자궁을 적출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박 씨가 일찍 병원에 갔더라면 암 전 단계에서 발견해 자궁을 살릴 수도 있었다. 김 교수는 “나이의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얼마나 빨리 암을 발견하느냐가 치료 성적을 크게 좌우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암의 증세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암 초기에는 증세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면밀히 관찰하면 발견할 수 있다.
자궁경부암과 자궁내막암일 때 가장 잦은 증세는 비정상적인 출혈이다. 생리 기간이 아닌 데도 출혈이 있거나 성관계 후 출혈이 생길 수 있다. 혹은 박 씨처럼 생리 자체를 안 할 때도 있다. 분비물에 피가 섞여 나오기도 한다. 복통이 나타날 수도 있다. 특히 하복부와 골반 주변에서 통증이 나타난다. 이 경우에는 이미 암이 진행됐을 확률이 높다.
난소암은 다른 암에 비해 특히 초기 증세가 없어 발견하기가 어렵다. 김 교수는 “난소암을 조기에 발견하느냐가 치료의 관건이다. 건강검진을 비롯해 꾸준히 관찰하는 게 현재로선 최선”이라고 말했다. ● 가임력 보존 치료 조건
부인암에 걸려도 가임력을 보존하면 향후 임신 출산이 가능하다. 다만 모든 환자에게 가임력 보존 치료를 적용할 수는 없다. 가능하다는 판단이 나오면 자궁과 난소를 살리면서 암을 치료한다.
자궁경부암의 경우 1기이면서 암 크기가 2cm보다 작아야 하고 공격성이 낮아야 가임력 보존 치료가 가능하다. 여러 검사를 통해 적합 여부를 판단한다. 조건이 맞으면 자궁 경부를 떼어내고 밑동을 묶는다. 밑동을 묶지 않으면 임신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20대 중반 이혜선 씨(가명)는 자궁경부암에 걸린 후 이 수술을 받았다. 이후 1차 임신 시도에는 실패했지만 2차 시도에 성공해 무사히 아기를 낳았다. 현재 이 씨는 건강하며 정기적으로 암 추적 관찰 중이다.
자궁내막암일 때 가임력 보존치료를 시도할 수 있는 조건도 비슷하다. 암이 1기이고 자궁내막에만 국한돼 있으며 공격성이 약해야 한다. 고용량 프로게스테론 호르몬을 투입한다. 처음에는 3개월, 나중에는 6개월 단위로 확인한다. 치료 기간이 꽤 지났는데도 암이 제거되지 않으면 자궁 적출을 검토한다.
30대 초반에 자궁내막암을 발견한 고민선 씨(가명)도 이 과정을 밟았다. 비만 체형이던 그는 체중부터 줄이고 6개월 동안 호르몬 치료를 받았다. 이후 임신에 성공해 쌍둥이를 출산했다.
난소암도 1기이며 악성도와 공격성이 모두 낮을 때 가임력 보존 치료가 가능하다. 추가로 암이 양쪽이 아닌 한쪽 난소에 국한돼 있어야 한다. 다만 악성으로 꼽히는 상피성 난소암일 때는 가임력 보존 치료를 신중히 결정한다. ● 풀어야 할 숙제는
가임력 보존 치료를 결정할 때는 암의 유형이나 병기(病期), 환자 상태 등을 모두 고려한다. 자칫 암 치료에 걸림돌이 된다면 이 치료를 시도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모든 진료 단계마다 여러 진료과가 협의해야 한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 활발한 소통도 필요하다.
젊으니까 괜찮을 거라는 안일함은 암 발견이나 치료에 큰 방해물이다. 김 교수는 “의외로 젊은 여성들이 암에 걸릴 나이가 아니라고 생각해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 경우 증세가 나타나도 시간만 허비하게 된다”고 말했다. 사회의 편견도 걸림돌이다. 김 교수는 “젊은 여성이 왜 산부인과를 가느냐는 식의 주변 시선을 의식해 병원 찾는 것을 꺼리는 여성이 많다. 특히 성 경험이나 출산 경험이 없을 때 그렇다”고 말했다.
젊은 부인암의 산정 특례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산정 특례는 암, 중증질환, 희귀질환 등에 걸렸을 때 일정 기간(보통 5년) 치료비의 5∼10%만 내도록 하는 제도다. 부인암 판정을 받더라도 5년이 지나면 혜택을 받지 못한다. 문제는 부인암 환자의 경우 가임력을 보존하려면 5년 이후에도 지속적인 관찰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데 있다. 갑자기 치료비가 껑충 뛰는 바람에 치료를 포기하거나 자궁과 난소를 적출해 임신을 포기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20대 초반에 자궁내막암 치료를 받은 신미진 씨(가명)가 그랬다. 암은 2년 만에 사라졌지만 진료는 그 후로도 이어졌다. 산정 특례 기간이 끝나 진료비가 뛰었다. 신 씨는 치료를 중단했고 몇 년 후 암이 재발했다. 이미 3기를 넘긴 상태라 자궁을 들어내야 했다. 산정 특례 혜택을 계속 받았더라면 암 재발을 일찍 발견해 자궁을 살릴 수 있었던 상황. 김 교수는 “홀로 모든 치료를 감당하는 젊은 부인암 환자를 많이 봤다. 그들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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