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모자라더라…” 치킨, 저울에 오른다

  • 동아일보

10대 치킨브랜드 중량표시제 도입… 정부, 용량 줄이는 꼼수 인상 차단
‘한마리’ 대신 ‘10호 951∼1050g’… 메뉴판-배달앱에 조리 전 중량 표시
15일 시행… 내년 6월까지 계도기간

서울 송파구에 사는 박주영 씨(29)는 최근 가족들과 치킨을 시키고 깜짝 놀랐다. 평소 즐겨 먹던 메뉴를 시켰는데 양이 줄어든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박 씨는 “예전에는 치킨 한 마리면 가족들이 배불리 나눠 먹었는데 요즘은 부담스러운 가격에도 양이 충분하지 않다”며 “병아리를 튀겼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왔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처럼 가격은 유지하면서 양을 줄여 사실상 물가를 올리는 식품업계의 ‘슈링크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정부가 치킨 중량표시제를 도입한다. 이달 15일부터 BHC, BBQ치킨 등 주요 치킨 프랜차이즈는 메뉴판에 가격과 함께 조리 전 중량을 표시해야 한다.

2일 공정거래위원회, 식품의약품안전처, 농림축산식품부, 기획재정부, 중소벤처기업부는 합동으로 이 같은 내용의 ‘식품분야 용량꼼수 대응방안’을 발표했다. 앞으로 10대 치킨 가맹본부와 소속 가맹점은 메뉴판의 가격 옆에 치킨의 조리 전 총중량을 표시해야 한다. BHC, BBQ치킨, 교촌치킨, 처갓집양념치킨, 굽네치킨, 페리카나, 네네치킨, 멕시카나치킨, 지코바치킨, 호식이두마리치킨 등이 해당된다. 이들 브랜드의 가맹점은 1만2560곳으로 전체 치킨 전문점의 4분의 1 수준이다.

메뉴판에 표시될 조리 전 중량은 g 단위 표시를 원칙으로 하되 한 마리 단위 조리가 이뤄지는 경우 ‘10호(951∼1050g)’ 등 호 단위로도 표기할 수 있다. 웹 페이지나 배달 애플리케이션에서도 중량을 밝혀야 한다.

정부는 자영업자의 부담을 고려해 내년 6월 말까지는 위반 시에도 별다른 처분 없이 올바른 표시 방법을 안내할 예정이다. 계도 기간 이후에는 시정 명령을 부과하고 반복 위반 시에는 영업 정지 등 엄정히 대응할 방침이다.

업체가 가격을 인상하거나 중량을 줄여 단위 가격이 오르는 경우에는 “다음 달 1일부터 콤보 순살치킨 중량이 650→550g으로 조정돼 g당 가격이 일부 인상된다”는 식으로 소비자에게 알리도록 유도한다. 다만 중량표시제 도입 초기인 만큼 가격 인상 고지는 의무화하지 않고 자율 규제하기로 했다.

그 대신 시장 감시를 강화한다. 내년부터 소비자단체협의회는 5대 치킨 가맹본부의 제품을 표본 구매한 뒤 중량, 가격 등을 비교한 결과를 분기별로 공개한다. 정부는 이러한 감시 활동에 예산을 지원한다. 소비자단체협의회는 연내 ‘용량꼼수 제보센터’도 설치할 계획이다.

가공식품에 대한 규제도 보완한다. 현재 19개 제조사, 8개 유통사가 제공한 가공식품 중량 정보를 바탕으로 한국소비자원이 중량 감소 여부 등을 점검하는데, 정보 제공 사업자를 확대할 방침이다. 내년 말까지 식약처 제재 수준도 품목 제조 정지 명령으로 강화한다.

정부가 외식업계의 ‘꼼수 가격 인상’에 칼을 빼 든 데에는 교촌치킨의 슈링크플레이션 논란이 영향을 미쳤다. 교촌치킨은 올 9월 순살치킨 메뉴의 중량을 줄이고 닭다리살만 사용하던 원재료를 닭다리살과 안심살 혼합으로 변경했다. 이후 소비자 반발이 이어지고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의 질타를 받자 이를 원상복구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11월 치킨 물가는 1년 전보다 3.1% 상승했다. 치킨 물가 상승률이 5.3%에 달했던 올 3, 4월보다 상승 폭이 줄었지만 여전히 소비자물가 상승률(2.4%)을 웃돌고 있다. 그동안 중량표시제가 도입되지 않아 치킨 슈링크플레이션이 물가 지표에 반영되지 않았던 점을 고려하면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치킨 물가는 더 높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향후 중량표시제 도입 대상 외식 업종 확대와 중량 감소 시 고지 의무 도입 등을 검토할 계획이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전 세계적인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프랑스는 지난해 7월부터 용량이 줄어 단위 가격이 인상된 경우 유통업체가 이를 2개월 동안 표기하도록 했다. 브라질은 제품 용량에 변화가 있을 때 변경 전후의 용량, 감소 비율 등을 포장에 표시하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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