男 주니어 스프린트 세계랭킹 1위
46년 만에 18세 대표선수 발탁
지난달 트랙 1km 10년만에 한국新
“선수촌에 올림픽 메달리스트 사진, 사이클 첫 메달 따서 내 얼굴 걸 것”
한국 사이클 기대주 최태호가 자신의 모교인 경기 부천시 중흥중교 훈련장에서 페달을 밟으며 몸을 풀고 있다. 18세의 나이로 2025∼2026시즌 사이클 국가대표로 선발된 최태호는 “2028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한국 사이클 최초의 올림픽 메달을 따고 싶다”고 말했다. 부천=변영욱 기자 cut@donga.com
“1등을 원했다기보다 그냥 재밌어서 했죠.”
최근 경기 부천시 중흥중에서 만난 사이클 기대주 최태호(18)는 자신의 사이클 입문 계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최태호는 12일 열린 대한사이클연맹 경기력향상위원회에서 트랙 단거리 부문 랭킹 1위로 2025∼2026시즌 국가대표에 선발됐다. 1979년 김영수 현 대한사이클연맹 수석부회장(61·당시 18세) 이후 46년 만에 나온 최연소 사이클 국가대표다.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는 최태호는 내년 9월에 열리는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출전도 유력하다.
18세의 어린 나이지만 최태호는 이미 한국 사이클의 미래가 아닌 ‘현재’다. 남자 주니어 스프린트 세계 랭킹 1위를 달리고 있는 최태호는 8월 네덜란드 아펠도른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한국 남자 선수 최초로 2관왕(스프린트·경륜)에 올랐다. 지난달 칠레에서 열린 세계트랙선수권 남자 1km 독주에서는 1분00초465의 기록으로 한국 신기록을 10년 만에 다시 썼다. 주니어 무대를 제패한 지 두 달도 지나지 않고 나선 첫 성인 무대에서도 제 기량을 마음껏 펼친 것이다.
최태호는 어릴 적부터 타고난 ‘운동광’이었다. 세 살 때 처음 스키를 탔고, 스키를 타지 못하는 계절에는 골프와 수영 등을 병행했다. 한마디로 ‘운동을 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아이’였다. 사이클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묘기 자전거인 바이시클 모터 크로스(BMX)로 입문했다. 중1 때 스피드를 다투는 트랙 사이클을 병행하기 시작했고, 중2 때부터는 트랙에 전념했다.
열정은 넘쳤지만 국내에는 그가 훈련할 수 있는 국제 공인의 250m 벨로드롬(사이클 전용 경기장)이 부족했다. 이 때문에 그는 이듬해 사이클 강국 호주로 사이클 유학을 떠났다. 이후 뉴질랜드 등에서 선진적이고 체계적인 훈련 프로그램을 소화하며 실력을 키웠다.
최태호는 스스로를 사이클에서만큼은 ‘지독한 완벽주의자’라 말한다. 완벽한 레이스를 펼치기 위한 철저한 자기 관리와 훈련은 기본이다. 경기장의 기압, 습도부터 경쟁자들의 작은 습관, 장비까지 하나하나 분석한다. 지난해 파리 올림픽 남자 사이클 트랙 3관왕(스프린트, 단체 스프린트, 경륜)에 오른 하리 라브레이선(28·네덜란드)은 그의 롤모델이다. 최태호는 “라브레이선은 올림픽과 월드챔피언십 대회에서 다른 체인링을 쓴다. 지난해 올림픽 이후에는 경주복을 바꿨더라”며 “사이클은 0.001초를 다투는 종목이기 때문에 이런 디테일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얼마나 많은 선수들의 정보를 꿰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그건 영업 비밀”이라며 웃었다.
최태호는 사이클 외에는 거의 시간을 쏟지 않는다. 유튜브나 소셜미디어 역시 라이벌 혹은 좋은 선수들의 전략과 성향 분석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취미도 사이클”이라는 최태호는 “사이클에서 받은 스트레스도 사이클로 푼다. 준비 과정이 힘들긴 해도 결국 이겨내고 성과를 내는 맛으로 훈련한다. 사이클이 내 최고의 ‘도파민’”이라고 말했다.
성인 무대에서 태극 마크를 달고 뛰는 최태호에게는 진천선수촌이 집처럼 편하다. 그는 “청소년 대표 선수 시절에도 와봤지만 진천선수촌은 사이클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최적의 공간이다. 다른 나라 선수들도 정말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최태호는 진천 소집 훈련이 없을 때는 2028년 올림픽이 열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인 훈련을 한다. 여러 가지 환경을 고려해 그는 8월 로스앤젤레스로 이사했다.
다만 모든 게 완벽해 보이는 진천선수촌에도 아직 채워지지 않은 빈자리가 있다. 한국은 아직 올림픽 사이클 종목에서 메달을 딴 적이 없다. 역대 최고 성적은 2000년 시드니 대회에서 조호성 서울시청 감독(51)이 기록한 포인트레이스 4위다. 최태호는 “선수촌 피트니스센터 벽면에는 전 종목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사진이 걸려 있다. 하지만 그 많은 선수들 가운데 사이클 선수가 없다는 게 항상 아쉬웠다”며 “언젠가 그곳에 내 얼굴이 걸리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후배들에게도 ‘우리도 해낼 수 있는 종목’이라는 희망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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