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통령 “금융 계급제” 지적에… 은행들, 취약층에 잇단 저리 상품
“反시장적 역차별 되레 毒” 우려
은행, 5년간 70조 포용금융 투입… 금융위 “이번주 계획 점검” 압박
이재명 대통령이 ‘금융계급제’라는 표현까지 쓰며 고강도의 금융 개혁 의지를 내비친 가운데 일부 은행에서는 신용점수가 높은 소비자의 대출 이자 부담이 큰 ‘금리 역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은행권이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이자 경감, 채무 조정 등의 금융 지원을 늘린 결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반(反)시장적 정책’이 금리 체계를 왜곡하고 성실 상환자를 역차별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 은행권 금리 역전 현상 ‘속출’
16일 은행연합회 소비자포털에 따르면 9월 신규 가계대출 기준 NH농협은행의 신용점수 601∼650점 대출자의 평균 금리는 연 6.19%로 600점 이하 대출자(5.98%)보다 0.21%포인트 높았다. 올 8월까지만 해도 600점 이하 대출자에게 적용된 평균 금리는 7.10%였다. 불과 한 달 만에 이자 부담이 1%포인트 넘게 줄어든 셈이다.
이 같은 금리 역전 현상은 다른 은행에서도 나타났다. 신한은행에서도 601∼650점 대출자의 금리(7.72%)가 600점 이하(7.49%) 대비 0.23%포인트 높았다. IBK기업은행 역시 601∼650점 대출자에게 600점 이하(4.73%)보다 0.40%포인트 높은 5.13%의 금리를 책정했다.
통상 고신용자는 보유 자산, 소득, 연체 이력 등에서 저신용자보다 우위에 있어 대출 금리가 상대적으로 낮게 책정된다. 고신용자의 대출 금리가 취약계층보다 높은 전례 없는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한 시중은행 지점장은 “정부의 포용금융 압박으로 인해 은행권이 취약계층 대출 상품을 너도나도 출시하면서 금리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된 것”이라고 했다. 은행권이 제공하는 취약계층 프로그램의 지원 대상은 통상 신용평점 하위 20%(700점 이하)를 대상으로 한다. 앞서 KB국민은행은 서민금융 상품 ‘KB 새희망홀씨II’의 신규 대출 금리를 10.5%에서 9.5%로 낮췄다. 신한은행도 ‘새희망홀씨대출 특별지원 우대금리’를 1.0%포인트에서 1.8%포인트로 확대 시행하고 있다.
● “반시장적 정책이 시장 왜곡” 우려
이 같은 은행권의 금리 역전 현상은 앞으로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KB,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등 5대 금융지주는 5년간 총 70조 원의 자금을 포용금융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포용금융이 확대되면 취약계층 대출 금리는 더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해 금융위원회는 이번 주 금융지주사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담당 임원들을 소집해 각 사의 포용금융 실천 계획을 점검할 예정이다.
금융권에 대한 정부의 포용금융 압박도 커지고 있다. 이 대통령은 13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현재 금융제도는 가난한 사람이 비싼 이자를 강요받는 이른바 ‘금융계급제’”라고 지적했다. 앞서 9월 “고신용자의 대출 금리를 높여 저신용자의 대출 금리를 낮춰야 한다”고 언급한 지 두 달 만에 금융 개혁 필요성을 또다시 언급한 것이다.
하지만 시장을 왜곡할 정도의 과도한 포용금융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지주 고위 관계자는 “은행들의 인위적인 대출 금리 조정은 결국 전체 금융 소비자들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며 “성실하게 대출을 갚는 사람들이 빚을 갚지 않거나 못 갚은 사람들에 비해 역차별을 받는 상황은 시장 원리에 반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리를 인위적으로 조정하기보다 저신용자를 위한 복지를 늘리거나 정부 재원으로 서민금융진흥원의 기금 여력을 늘리는 방안이 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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