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일할 30대가 쉰다]
30대 “그냥 쉼” 33만명 역대 최대… 전체 취업 늘었지만 서비스업 중심
제조-건설업 16개월 이상 연속 감소… ‘일자리 미스 매치’ 현상 심화 분석
“연공형 임금체계 등 구조개혁 필요”
회사 3곳을 옮겨다니며 9년가량 직장 생활을 해왔던 박모 씨(36)는 지난해 말 물류 업체를 그만뒀다. 대기업이나 처우가 좋은 곳으로 이직을 꿈꿨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올 초 대기업과 중견기업 경력 공채에 지원했지만 번번이 탈락했다. 경력 공채의 문이 계속 좁아지면서 7월부터는아예 구직 활동에 손을 놨다.
박 씨는 “40대도 뽑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야 할지, 눈을 낮춰서 적은 연봉을 주는 회사라도 가야 할지 고민이 많다”고 토로했다.
중소기업 영업직으로 일하다 올 2월 퇴사한 박모 씨(31)도 ‘쉬었음’ 청년이 됐다. 그는 “일을 하고 싶어도 30대 초반의 나이에 처우가 좋은 회사에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내년이라고 괜찮은 일자리가 생길지 확실하지 않아 더욱 막막하다”고 했다.
구직활동을 포기한 30대 청년들은 일을 하고 싶어도 ‘좋은 일자리’가 없다고 토로하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처우 격차가 커지는 가운데 취업문은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 전반에 인공지능(AI)이 도입되고, 기업들의 국내 투자가 줄어들수록 ‘쉬었음’ 청년 수는 더욱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 30대 쉬었음 넉 달 연속 30만 명대
12일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고용동향에 따르면 30대 쉬었음 인구는 올 7월부터 4개월 연속 30만 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달 2만4000명이 늘면서 60세 이상(9만4000명)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증가 폭을 보였다.
30대 쉬었음 인구는 구직 의욕이 있지만 원하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국가데이터처의 비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 결과 올 8월 기준 30대 쉬었음 인구의 27.3%는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서 쉬고 있다고 답했다. 다음 일 준비를 위해 쉬고 있거나(17.4%) 일자리가 없다(8.1%)는 것도 주요 이유로 꼽혔다. 30대 비경제활동인구 중 향후 1년 이내 취업·창업을 희망하는 비중은 46.5%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다.
통상 30대는 활발히 직장을 옮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건설업, 제조업 등 주력 산업의 고용이 부진해 취업 경쟁이 심해진 데다 기업들의 AI 전환도 쉬었음 증가에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10월 전체 취업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19만3000명 증가했지만 주로 보건·복지 서비스업 등 내수 중심 일자리에 치우쳤고, 제조업과 건설업 일자리는 각각 16개월, 18개월째 줄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AI로 대체되기 어려운 업무 노하우를 가진 숙련된 40대 관리자급 노동자와 달리 단순 문서 작업 비중이 높은 30대 대리급 인력은 챗GPT 등 생성형 AI로 쉽게 대체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고학력 유휴 인력도 늘었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청년층 쉬었음 인구 증가 원인과 최근의 특징’ 보고서에 따르면 25∼34세 쉬었음 인구 중 대졸 이상의 비중은 2015년 54.3%에서 지난해 58.8%로 증가했다.
고용시장 핵심 계층에서 쉬었음 인구가 늘어날수록 사회적 비용도 커진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쉬었음 청년(15∼29세)으로 인해 발생한 경제적 비용은 44조5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 청년층 고용 한파 더 거세질 듯
청년층 취업 문턱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15∼29세 취업자 수는 1년 전보다 16만3000명 줄어든 352만1000명으로 집계됐다. 이 중 20대 취업자가 15만3000명 줄어 전 연령대 가운데 감소 폭이 가장 컸다. 청년층 고용률 역시 전년 동기 대비 1.0%포인트 떨어진 44.6%로 18개월 연속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
특히 AI를 많이 활용하는 업종일수록 청년 고용이 크게 위축되는 양상을 보였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7월부터 올 7월까지 청년층 일자리가 21만1000개 감소했는데 이 중 20만8000개(98.6%)가 AI 노출도가 높은 업종이었다.
최근 법정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는 방안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가운데 기존 임금체계 등을 유지한 채 정년만 연장할 경우 청년층 취업난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주력 업종의 고용이 부진한 상황에서 AI 전환, 정년 연장이 더해지면 청년층 구직활동이 더 위축될 수 있다”며 “연공형 임금체계 개선 등 노동시장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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