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검찰이 11일 에크렘 이마모을루 전 이스탄불 시장(54)에게 징역 2430년을 구형했다. 이마모을루 전 시장은 2003년부터 장기집권중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의 최대 정적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올 3월 뇌물 수수와 반정부 테러 단체 지원 혐의로 체포된 이래 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야당은 정치적 기소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TRT하베르 등 현지매체 보도 따르면, 이스탄불검찰청은 이날 이스탄불시청 비리 사건과 관련해 이마모을루 전 시장을 비롯한 402명을 총 142개 혐의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그가 테러 조직을 만들어 뇌물 수수, 사기, 입찰 조작, 범죄수익 세탁, 개인정보 누설 등을 저질렀으며 이로 인해 1600억 리라(약 5조5300억 원)의 공공 손실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간첩 혐의도 추가됐다.
이어 검찰은 이마모을루 전 시장이 속한 공화인민당이 불법 자금으로 운영됐다며 정당 해산 검토도 법원에 요청했다. 공화인민당의 외즈귀르 외젤 대표는 이번 기소가 “완전히 정치적 목적”이라며 “공화인민당을 저지하고 당 대선 후보를 막으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1970년 트라브존주 악차바트에서 태어난 이마모을루 전 시장은 고교 졸업 후 이스탄불로 이주해 이스탄불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건설업계에서 일하다 2014년 정계에 입문한 그는 2019년 3월 인구 1600만 명 대도시 이스탄불 시장 선거에서 당선되며 전국적 지명도를 얻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속한 집권 정의개발당(AKP)이 오랫동안 독식해온 이스탄불 시장 선거에서 정의개발당 후보를 큰 표 차로 이긴 것이라 큰 주목을 받았다.
에크렘 이마모을루 전 이스탄불 시장이 2019년 시장직에 출마할 당시 모습. 출처 본인 X 계정 에르도안 대통령의 전방위적 견제 속에서도 이마모을루 전 시장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의 심복인 여당 후보를 12%포인트 차이로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 재임 중 뚜렷한 성과나 업적을 남겼다는 평가는 별로 없었지만 압승을 거둔 것은 에르도안 정부가 책임져야 할 경제난과 장기 집권에 대한 피로감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재선 이후 일약 차기 대선 후보로 부상한 그는 주요 여론조사에서 에르도안 대통령보다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강경한 이슬람 원리주의를 주창해온 에르도안 대통령과 달리 쿠르드족이나 타 종교에 대한 포용적인 입장을 보여서 차별화했다.
조기 대선 실시를 노리는 제1야당 공화인민당은 대선 후보 선출 일정을 올해 3월 24일로 잡았다. 그러나 선출 엿새 전인 3월 18일 그의 모교 이스탄불대가 30여년 전 발급한 그의 학사 학위를 갑작스레 취소했다. 튀르키예에서는 대학 졸업장이 있어야 대선에 출마할 수 있다. 다음날인 19일 경찰은 그가 에르도안 정권이 테러 조직으로 지정한 쿠르드노동자당을 지원했고 지난해 지방선거 과정에서 뇌물 수수와 횡령 혐의가 있다며 전격 체포했다. 체포 직전 영상 메시지에서 그는 “거대한 폭정에 직면했지만 낙담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마모을루 시장 체포 이후 이스탄불과 앙카라 등 곳곳에서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야당을 지지하는 시민들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대선 전 최대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 그를 체포했다며 분노하고 있다. 최근 10년 새 튀르키예에서 일어난 시위 중 최대 규모로 200만 명 시민과 학생이 거리로 나왔다. 소셜 미디어를 통제하고 집회를 막는 정부의 강경 대응으로 시위는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으나, 다시 격화될 가능성이 남아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현재 2028년 7월까지의 임기가 보장돼 있다. 임기 만료 전 조기 대선을 치를 경우 재출마가 가능해 2033년까지 집권할 수 있다. 조기 대선을 통해 사실상의 종신 집권 행보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2003년부터 장기 집권하며 ‘현대판 술탄’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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