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정해진 것일까, 인간의 의지로 만들어 가는 것일까. 우연히 얻게 된 무언가로 엄청난 일을 하고, 세상의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려가는 이가 있다. 몰랐던 진실을 마주하며 발걸음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운명과 마주하는 이들을 그린 뮤지컬을 살펴보자.》
>> 뮤지컬 ‘데스노트’- 정의를 향해 던지는 강렬한 질문
뮤지컬 ‘데스노트’에서 테니스 경기 후 라이토(조형균·왼쪽)와 엘(김성규·오른쪽)을 사신 류크(임정모·가운데)가 지켜보고 있다.
노트에 이름을 쓰면 그 사람이 죽는 데스노트. 무료함에 지겨워하던 사신 류크는 데스노트를 일부러 인간 세계에 떨어뜨린다. 우연히 이를 주운 고교생 라이토. 공부는 물론 스포츠 실력도 뛰어난 라이토는 법이 단죄하지 못한 범죄자의 이름을 데스노트에 쓰며 이들을 처단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범죄자를 응징하는데 열광하고, 라이토는 점점 대담하고 위험한 시도에 나선다. 명탐정 엘(L)은 잇따른 죽음의 배후를 바짝 추격해 나가고, 라이토와 엘은 팽팽한 두뇌 싸움을 벌인다.
동명의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만들었다. 강렬하고 속도감 있는 이야기에 프랭크 와일드혼의 중독성 깊은 음악이 결합돼 무대에 곧장 빠져들게 된다. 발광다이오드(LED)로 무대의 3면을 정교하게 활용해 도심 교차로, 경찰서, 테니스장 등 숱한 장소가 빠르게 전환된다. 긴장감 속에 몰입도를 한층 높인다.
이번 공연에는 새로운 얼굴들이 무대를 채웠다. 라이토 역은 조형균 김민석 임규형이 맡았다. 엘은 김성규 산들 탕준상이 연기한다. 사신 렘 역은 이영미 장은아, 류크 역은 양승리 임정모에게 각각 돌아갔다. 스타 아이돌 가수 미사는 최서연 케이가 연기한다. 라이토와 엘이 벌이는 긴박한 추격전 속에 인간 세상의 단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미사는 부모님을 숨지게 한 이가 처벌받지 않자 좌절하지만 그를 단죄한 라이토를 깊이 사랑하게 된다. 렘은 그런 미사에게 조건 없이 애정을 쏟는다. 거세게 소용돌이치는 인간 세계를 바라보며 렘과 류크가 나누는 대화는 인간과 사회를 곱씹어보게 한다. 선과 악, 증오와 복수, 자만과 희생을 예리하게 그리며 인간이 인간을 어디까지 처벌할 수 있는지 묻는다.
내년 5월 10일까지. 서울 구로구 디큐브 링크아트센터. 14세 이상 관람 가능. 8만∼17만 원.
>> 뮤지컬 ‘에비타’- 야망을 향한 불꽃, 그 빛과 그림자
뮤지컬 ‘에비타’에서 에바 페론 역을 맡은 배우 김소현 김소향 유리아.(왼쪽부터) 블루스테이지 제공가난한 사생아였지만 아르헨티나의 영부인이 된 실존 인물 에바 페론(1919∼1952)의 뜨겁고 짧은 생애를 매혹적인 선율로 그린 작품이다. 팀 라이스와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만들었다. 1978년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첫 선을 보인 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2006년 초연됐고 2011년 두 번째 공연 후 이번이 세 번째 무대다.
‘에비타’라는 애칭으로 유명한 에바 페론의 삶을 ‘체’라는 해설가를 통해 조망한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여러 남자들을 거침없이 이용하고, 후안 페론과 결혼한 에바 페론의 행보에 망설임은 없다. 후안 페론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에바 페론이 부른 유명곡 ‘Don’t Cry for Me Argentina’는 가슴을 뜨겁게 달군다.
성녀와 악녀로, 극과 극의 평가를 받는 에바 페론을 바라보는 체의 시선은 냉소적이다.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하고 가난한 이들을 지원했지만 포퓰리즘 정책으로 비판받고 몰래 돈을 챙기는 등 에바 페론이 걸어간 길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영부인이라는 정점에 올라 권력을 음미하지만 때로 혼란스러워하고 병으로 무너져 내리는 몸을 보며 두려워하는 한 인간이기도 하다. 드라마틱한 이야기에 에바 페론이 시원스레 내지르는 고음, 절도 있고 힘찬 군무, 관능적인 춤이 어우러지며 열기를 뿜어낸다.
에비타 역은 김소현 김소향 유리아가 맡았다. 체는 마이클 리, 한지상 민우혁 김성식이 연기한다. 후안 페론 역에는 손준호 윤형렬 김바울이 발탁됐다.
내년 1월 11일까지. 서울 강남구 광림아트센터 BBCH홀. 7세 이상 관람 가능. 6만∼16만 원.
>>뮤지컬 ‘이름 없는 약속들로부터’- 비극의 상처, 마주하고 기억하다
뮤지컬 ‘이름 없는 약속들로부터’에서 희택(나재엽·왼쪽)과 윤섭(이선우)이 대화하고 있다.(왼쪽 사진) 경찰인 윤섭(임강성·왼쪽)은 인경(장보람)을 압박한다. 오차드뮤지컬컴퍼니 제공1961년 서울대 상과대 2학년 우현은 6·25전쟁 중 사라진 큰형 희택을 찾으려 애쓴다. 윤섭은 동생 우현을 자식처럼 돌보지만 형 희택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다. 우현의 선배로, 양민학살유족회 청년학생위원장인 인경은 기록되지 않은 죽음에 대해 파고든다.
6·25전쟁 당시 벌어진 양민 학살의 진실을 파헤치고 살아남는 자들이 짊어져야 할 책임을 비춘 창작 뮤지컬이다. 전쟁이 할퀴고 간 상처, 침묵과 망각으로 인한 고통을 가족사를 통해 한 겹씩 차례로 벗겨낸다. 국가의 폭력이 인간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아프게 보여준다. 진실을 드러내고 기억함으로써 또 다른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책임이 남은 자에게 있음을 묵직하게 전한다.
배시현 작가, 강철 작곡가가 만들었다. 우현 역은 이선우 임태현 조성태가 맡았다. 윤섭은 임강성 김대웅 황두현이 연기한다. 인경 역에는 최태이 장보람 윤지우가 발탁됐다. 윤섭의 아내이며 작가로 활동하는 주희는 이은율 류비가 연기한다.
12월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극장 온(구 CJ아지트). 10세 이상 관람 가능. 4만4000∼6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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