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차인표, 식당-숙소서도 노트북과 씨름… “어디서든 강의 준비”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0월 24일 16시 45분


사진=류블랴나 대학교 한국학과 제공. 신애라 페이스북
사진=류블랴나 대학교 한국학과 제공. 신애라 페이스북

배우이자 소설가 차인표 씨의 아내 신애라 씨가 “어디서든 강의 준비하는 남편”이라며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진 여러 장을 올렸다. 사진에 담긴 차 씨는 식당, 숙소 등에서 안경을 끼고 노트북으로 강의 자료 작성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었다. 그는 슬로베니아와 튀르키예 유럽 2개국에서 자신의 소설을 주제로 강연했다.

강의 준비하는 차인표. 신애라 페이스북
강의 준비하는 차인표. 신애라 페이스북
신 씨는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편은 어디서든 강의 준비를 했고, 나는 어디서든 먹었다. 그 결과, 남편은 멋진 강의를 했고 나는 여느 때처럼 여행살 2kg을 얻었다”며 강연 준비를 하는 차 씨의 사진 여러 장을 올렸다.

신 씨가 올린 사진 속에는 차 씨가 운동화를 신고 안경을 쓴 채 식당 혹은 카페로 보이는 곳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는 모습이 담겼다. 다른 사진에는 숙소로 추정되는 공간에서 반팔 차림에 더벅머리 상태로 노트북을 골똘히 바라보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음식들 옆에 노트북이 빼꼼히 보이는 사진도 있었다. 신 씨가 찍은 사진들로 미루어 차 씨는 여정 내내 강의 자료 준비를 위해 노트북과 씨름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소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으로 강연을 하고 옥스퍼드 내 43개 칼리지 도서관에 비치되는 등 해외에서도 소설가로 인정 받은 차 씨는 이번에 동유럽의 슬로베니아와 튀르키예에서 각각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과 ‘인어사냥’으로 강연했다.

강의 준비하는 차인표. 신애라 페이스북
강의 준비하는 차인표. 신애라 페이스북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은 차 씨가 2009년 처음으로 썼던 소설 ‘잘가요 언덕’을 개정한 것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문제를 청소년들이 접근하기 쉽게 아름다운 동화의 언어로 풀어내 화제가 된 작품이다.

2022년 출간된 ‘인어사냥’은 동해안 전설 속에 등장하는 인어와 그 인어를 잡아 기름(어유)을 짜 영생을 얻으려는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이 빚어낸 환경 파괴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낸 작품으로 지난 9월 제14회 황순원 문학상 신진상을 수상했다.

차 씨는 지난 21일 슬로베니아 수도 류블랴나에 있는 류블랴나 대학교 인문대학 5층 블루룸에서 특별 강연을 가졌다.

류블랴나 대학교는 1810년 처음 설립된 245년 전통의 슬로베니아 최대 규모의 종합대학교다. 교원 수가 3500여 명, 학생 수가 5만 6000여 명에 이르는 동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명문 대학으로 알려졌다. 올해로 설립 30주년을 맞는 류블랴나 대학교 아시아학부에 한국학과가 설치된 것은 지난 2023년. 현재 1, 2학년 각각 15명씩 30명의 학생들이 한국학을 전공하고 있다.

강의 준비하는 차인표. 신애라 페이스북
강의 준비하는 차인표. 신애라 페이스북
이날 열린 차 씨의 특강에는 류블랴나 대학교 한국학과 학생 30명과 다른 학과에서 한국학과 관련된 과목을 공부하는 학생 20명, 그리고 교직원과 류블랴나에 거주하는 한국 동포, 그리고 크로아티아, 이탈리아, 프랑스, 체코 등 다양한 국가에서 온 60여 명이 참석했다.

특강의 주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동화의 감각으로 쓴 자신의 소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의 북토크 형식으로 진행돼 차 씨의 강연과 학생들의 질의응답으로 진행됐다.

차 씨는 강연에서 ‘용서를 구하지 않는 사람을 우리는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그들에게 사과를 받으려는 것은, 그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용서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등의 내용으로 약 한 시간 가량 강연을 이어갔다. 강연 후 이뤄진 학생들의 질문도 그 어떤 전공과목 수업에서보다 뜨거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날 강연 후 한국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인 마야 베고비치(Maja Begovic) 학생은 “작품이 처음 출간되고 오랜 시간이 흘러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고, 차 씨는 “한국에서 일본군 위안부 사건은 오랜 시간이 지난 일임에도 전혀 잊힌 과거가 아니고, 오히려 더 많은 관심이 생기고있는데 바로 공감(empathy)의 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한국학과 2학년 카트카 프란야 슬로사르(Katka Franja Slosar) 학생은 “전 세계적으로 K-컬처가 붐을 일으키고 있다.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을 던졌고, 차 씨는 이 질문을 한국학을 전공하는 그들에게 되물었다. 학생들은 “이것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K-컬쳐는 앞으로 그 저변을 더 넓혀갈 것”이라고 대답했다.


사진=류블랴나 대학교 한국학과 제공
사진=류블랴나 대학교 한국학과 제공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 대학교에서 강연을 마친 차 씨는 이어 튀르키예 이스탄불 대학교로 이동해 또 다른 소설 ‘인어사냥’으로 두 번째 강연을 진행했다.

차 씨는 23일 이스탄불 대학교 본관 2층 블루홀에서 이스탄불 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진 및 재학생, 이우성 주이스탄불 대한민국 총영사 및 공관원, 이스탄불 세종학당 강사 및 수강생, 이스탄불 주재 재외국민과 한국 문학에 관심 있는 튀르키예 현지인 등을 120여 명을 대상으로 ‘차인표 작가와의 만남‘을 가졌다.

이스탄불 대학교는 역사가 570년을 넘는 명문대학교다. 학부생과 대학원생을 합쳐 6만 8000명이 넘는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튀르키예 최대 국립대학이며, 2명의 튀르키예 대통령과 1명의 총리를 배출했고, 200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오르한 파무크를 비롯해 2명의 노벨상 수상자도 배출했다. 튀르키예 화폐에 도안되기도 한 학교다.

이스탄불 대학교의 한국어문학과는 지난 2016년 설치돼 튀르키예의 한국 문화 알리기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차 씨의 이번 강연은,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지원하는 ‘한국 문학 번역 워크숍’ 의 일환으로 열렸다. 전설 속의 인어를 통해 인간의 욕망과 환경 파괴에 대한 문제 의식을 담은 소설 ‘인어사냥’을 대상으로 이스탄불 대학교 한국어문학과 학생들이 ‘한국문학 번역 세미나’를 가진 것이다.

식사 와중에도 강의 준비하는 차인표. 신애라 페이스북
식사 와중에도 강의 준비하는 차인표. 신애라 페이스북
이미 튀르키예에서는 K-팝과 K-드라마가 여러 해 전부터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고, 그런 탓에 많은 사람들이 배우 차 씨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이날 강연에 참석한 대학생과 일반인들도 차인표 작가의 ‘사랑을 그대 품안에’나 ‘왕초’, ‘불꽃’, 등의 드라마를 좋아했다. 영상 속에서 보던 ‘차인표’가 아닌 소설의 저자로 만난 ‘차인표’에 대해 참석자들은 큰 관심을 보였다. 특히 인상 깊게 읽은 소설의 저자를 직접 대면하고 그의 열정적인 강연을 들으면서 강연장이 뜨겁게 달아올랐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차 씨의 강연을 들은 이스탄불 대학교 한국어문학과 학생들은 진지하면서도 평소 좋아하는 한국의 스타이자 저자를 만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한국어문학과 4학년인 메르베는 “소설 ‘인어사냥’에서는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는 기제로 ‘어유’가 등장한다. 저는 SNS가 현대 사회에서 ‘어유’의 역할을 하는 것 같다”며 작가의 생각을 물어 차인표는 물론 다른 참석자들을 놀라게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강연을 들은 참석자들은 “세상을 이해하는데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살아가기 위해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마음에 파고 들었다”, “인간의 탐욕에 대한 메시지가 강렬하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차인표 강의 포스터
차인표 강의 포스터

류블랴나와 이스탄불 두 대학교에서의 강연을 마친 차 씨는 “두 학교 모두 학생들의 표정과 태도가 대단히 진지했다. 아직은 낯선 한국 문학에 대한 강의임에도 끝까지 집중하는 열기와 정성이 느껴졌다”며 “비단 나의 소설에 보내는 관심이 아니라, 전 세계에 퍼진 한류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소감을 전했다.

이어 “류블랴나, 이스탄불 두 대학교 모두 강연 후 여러 학생들이 메시지, SNS DM 등을 통해 추가 질문을 해오고 있다. 류블랴나 대학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을 슬로베니아어로 번역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했고, 이스탄불 대학은 올해 ‘인어사냥’을 번역한 데 이어 내년에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을 번역하고 싶다, 그때 또 특강을 와달라고 요청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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