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이 작은 목소리로 무엇을 마시겠느냐고 묻는다. 하얀 반누보(vent nouveau) 종이로 된 메뉴판 음료 항목을 훑어본다. 튀르키예 초행길. 튀르키예식 커피를 고른다. 얼마 뒤, 에스프레소 잔만 한 커피잔을 가져다준다. 진한 갈색, 따스한 한 모금을 마신다. 곱게 간 커피콩 알갱이 한둘 혀끝에 감돌다 사라진다. 잔 받침에 놓인 튀르키예 과자 로쿰을 한입 베어 문다. 찹쌀떡 비슷한 식감. 왜 ‘튀르키예의 기쁨(터키쉬 딜라이트)’이라 불리는지 알 것 같다. 온몸이 기분 좋게 나른해진다. 좌석 터치패널에서 ‘취침’ 버튼을 꾹 누른다. 의자가 길게 180도로 펴진다. 식사가 나올 때까지 잠시 눈을 붙인다.
지난달 인천공항에서 이스탄불로 가는 터키항공 비행기에 올랐다. 비즈니스 클래스다. 폭 66cm, 풀 플랫(full flat·완전한 수평) 길이 193cm인 의자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복도 건너 한국프로축구 K리그 역대 최고 외국인 선수였던 데얀(몬테네그로)과 그의 가족이 타고 있다. 키 187cm인 데얀의 누운 모습이 편안해 보인다. 의자 발치에 부착된 발 받침대까지 포함하면 신장 2m 넘는 사람도 너끈하다. B777-300ER 기종 좌석에는 마사지 기능도 있다. 물결 버튼을 누르니 등허리에 잔잔한 진동이 느껴진다.
공중에서의 짧은 낮잠은 달콤하다. 기내에 잔잔하게 풍기는 음식 냄새에 눈을 깬다. 기내에 발을 들였을 때 토크 블랑슈(toque blanche·하얀 요리사 모자)를 쓰고 승객들을 반겨 주던 요리사가 앞에 서 있다. 주요리 세 가지 가운데 무엇을 먹을 건지 물어본다. 튀르키예식 사워 소스를 얹은 살짝 구운 농어 필레를 택한다. 메뉴에는 애피타이저와 디저트 항목도 있는데 묻지 않는다. 이유는 좀 이따 알게 된다.
비즈니스 클래스 메인 요리.
승객 주문을 모두 받은 지 10분쯤 지났을까. 승무원이 복주머니처럼 생긴 아마포 주머니와 버터, 잼, 올리브기름, 후추와 소금이 각각 담긴 앙증맞은 용기들을 접시에 내온다. 주머니 안에 든 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빵’. 1만2000여 년 전 고대 아나톨리아 유적에서 발견한 밀 씨앗을 토대로 재현한 외알밀(아인코른밀)과 앰머밀로 만들었다. 시간의 흔적이 느껴지는 맛이다.
얼마 뒤 요리사가 각종 애피타이저가 실린 트롤리를 밀고 나온다. 직접 보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신선한 채소와 치즈가 담긴 접시도 보인다. 새우 시저 샐러드로 정한다. 주요리를 마치면 디저트 트롤리가 나타날 것 같다. 예상은 맞아떨어진다. 3단 선반에 실린 각종 로쿰, 과자, 과일, 크레이프, 아이스크림 등. 무얼 고를지 잠시 주저한다. 기내식 제공 후에는 승무원 대기 공간 옆에 작은 스낵바가 꾸려진다. 대추야자 절임을 권하고 싶다. 터키항공 비즈니스 클래스 기내식은 이처럼 기내 전담 요리사 ‘플라잉 셰프’가 미려한 맛과 만족을 제공한다.
베딩을 마친 비즈니스 클래스 좌석.승무원이 좌석을 침대로 바꾸려고 다가온다. 의자 등받이와 앉는 부분을 벨벳 스웨이드 누비천으로 된 시트로 덮는다. 표면에 터키항공을 상징하는 ‘바람의 흐름(플로)’ 문양이 수놓아져 있다. 같은 재질 이불을 깔고 새틴 소재 베개를 놓는다. 이부자리가 준비됐다. 발 받침대 덮개를 열고 ‘랑방’ 파우치를 꺼낸다. 고전적이며 우아한 디자인의 어메니티 손가방이다. 안대, 친환경 귀마개, 립밤, 핸드 로션, 수면 양말, 대나무 칫솔, 치약 등이 들어 있다. 화장실로 간다. 세면대 옆 핸드워시와 로션은 ‘몰튼 브라운’ 브랜드다. 디퓨저 스틱 향이 은은하다.
시트를 덮고 몸을 눕힌다. 1만 m 상공 엔진과 바람 소리를 소거하는 데논 헤드폰을 쓰고 영화 ‘대부’(1972)를 영어 자막으로 본다. 35년 전 처음 볼 땐 몰랐던 의미들이 장면, 장면에서 새롭게 나타난다. 마이클 콜리오네가 대부가 되면서 문이 닫힌다. 얼마 전 별세한 다이앤 키튼(케이 역)이 망연자실 문을 바라본다. 그 장면을 보며 눈이 스르르 감긴다. 몇 시간 뒤 이스탄불에서 깨어날 것이다. 이스탄불공항 라운지에서 샤워를 하며 여독을 풀어야지.
1933년 항공기로 시작한 터키항공은 현재 508대 항공기(여객 및 화물)로 131개국 302개 노선과 국내선 53개 노선 등 총 355개 튀르키예 국내외 지역을 운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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