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예린과 더 발룬티어스 “우리가 가고 싶은 꿈의 길로 걸어간다면…”[인터뷰]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27일 11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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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팝스타가 거친 록 밴드 보컬로 다시 데뷔하는 일. 동서고금을 뒤져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안 가본 길은 인간을 매혹한다.

‘Square’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의 싱어송라이터 백예린(24)이 록으로 중무장해 돌아왔다. 밴드 ‘The Volunteers’(한국어명 ‘더 발룬티어스’)의 보컬로서다. 이들의 1집 ‘The Volunteers’(27일 오후 6시 발매)는 질풍노도의 첫 곡 ‘Violet’부터 대중에게 익숙한 백예린의 80%를 찢고 시작한다. ‘눈의 꽃’의 나카시마 미카가 영화 ‘나나’에서 펑크 록커로 변신했던 2005년의 일도 생각났다.

앨범에 실린 10곡 전곡을 미리 들어봤다. 배반이란 때로 사람을 미치게 한다. 윤기 있는 중저음, 세련된 비브라토로 뻗는 고음…. 백예린 특유의 보컬은 갈아대는 록 기타, 난타하는 드럼과 덜컹대며 짜릿하게 들어맞는다. 초기 라디오헤드를 연상시키는 격정적인 사운드 위로 앨라니스 모리셋, 크랜베리스, 브리더스, 가비지, 시네이드 오코너의 환영도 스쳐갔다.

공식 데뷔를 앞둔 밴드 ‘더 발룬티어스’의 네 멤버, 백예린(보컬·기타), 구름(베이스), Jonny(기타), 김치헌(드럼)을 최근 서울 마포구의 음악 작업실에서 만났다. 합주실엔 드럼세트, 기타앰프, 케이블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록의 온기가 얼음을 녹이고 네 잔의 아이스커피가 바닥을 드러낼 때쯤, 이 ‘자원봉사자들’의 정체는 조금 더 또렷해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아낌없이 돕는 사람들. 그리고. 비틀스, 크랜베리스, 더 발룬티어스….
―‘The Volunteers’라니…. 국어로 옮기면 자원봉사자들인가요. 유래가 궁금해요.

백예린(이하 예린): “조니, 형석, 저, 이렇게 셋이서 여행을 간 적이 있어요. ‘우리 밴드 하자!’ 해놓긴 했지만 계속 감정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고 방황하던 무렵이었죠. 멤버 오빠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밴드명을 엄청 생각해보다가 ‘The Volunteers’가 떠오른 거예요. 제가 오빠들한테 받는 만큼 돌려주지 못했음에도 너무 열심히 도와주고 ‘이렇게 해보자, 저렇게 해볼까’ 했던 게 너무 고마워서요. ‘더 발룬티어스…. 자발적으로 도와주는 고마운 오빠들.’ 저 역시도 베풀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짓기도 했어요. 사람이 사람을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도와준다는 게 흔치 않은 일이잖아요.”

Jonny(조니): “이거다 싶었죠. 저는 늘 ‘The …s’로 된 밴드 이름들이 좋았거든요.”

―좋아하는 ‘…스’ 밴드가 있다면?

조니: “비틀스(The Beatles).”

고형석(형석): “크랜베리스(The Cranberries).”

김치헌(치헌): “더 발룬티어스….”

조니: “앞에 ‘The’ 뺀 티셔츠 입고 록 페스티벌 가면 우리 진짜 자원봉사자 돼.”

―2017년 결성. 음원을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리기 시작한 건 2018년…. 시간 간격이 좀 있어요. 정식 데뷔앨범을 지금 이 시점에 내게 된 이유는요?

예린: “밴드 결성 초기에는 멤버들이 여기 정식으로 올인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저의 레이블(블루바이닐)이 생기고 나서는 좀더 편하게 밴드 음악을 제대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R&B 기반의 팝 가수가 이 정도로 거친 록 밴드의 보컬로 변신한 것이 놀라워요. 국내외에서 비슷한 예가 잘 떠오르지 않네요. 아주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 것 같아요.


예린: “20대 초반에 힘든 시기를 보냈어요. 그때 밴드 ‘바이 바이 배드맨’의 음악을 접하고 좋아하게 됐고, 공연까지 보러 다니면서 위로를 많이 받았어요. 오빠들(조니, 형석)과 친해지면서 밴드 음악을 더 많이 접하게 됐죠. 나이도 어리고 힘들던 시기에 좋은 사람들을 만난 거죠. 어떻게 보면 오빠들이 없었다면 제가 록에 관심을 가질 기회가 영영 없었을지도 몰라요. 그러다 함께 (영국 밴드) 오아시스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슈퍼소닉’을 보게 됐어요. 근데 록 신(scene)은 분위기가 너무 다른 거예요. 저는 늘 조금 스스로를 틀에 가둬 생각했고, 착한 아이로 지내야 한다는 부담감 같은 게 있었거든요. 그런데 ‘슈퍼소닉’을 보면서 좀더 내 맘대로 즐기고 자유롭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그러고 나서는 제 안의 다른 자아를 대중 분들한테도 보여드리고 싶어졌죠.”

―작년 예린 씨 솔로 앨범 인터뷰 때 영국 밴드 ‘울프 앨리스’의 팬이라고 했던 게 생각나요.

예린: “네. 오빠들과 어딜 가다가 차 안에서 우연히 접하고 너무 빠졌어요. ‘이렇게 자유롭게 자아를 표현할 수 있다니!’ 공연 영상을 찾아보다가 (영국)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의 존재도 알게 됐고요. 저 좀 많이 늦었죠? 너무 좁게 살았나 봐요. 여자 프런트퍼슨으로서 멋있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울프 앨리스 덕에 많이 하게 됐어요.”

―초기에 조니 씨, 형석 씨와 의기투합한 건데, 치헌 씨는 어떻게 들어오게 됐나요.

예린: “‘밴드 해보자!’ 뒤에 ‘드러머는 어떡해?’ 했더니 형석 오빠가 대학 후배가 하나 떠오르는데 한번 연락을 해보겠다고 했어요. 저희끼리 만든 데모 한두 곡을 들려줬더니 ‘오케이’를 해서 그 뒤로 이렇게 넷이 어울리게 됐죠. 히히.”

―과묵한 치헌 씨, 이쯤 해서 한 말씀 해주시죠?

치헌: “음…. 제가 정식 밴드 활동은 ‘The Volunteers’가 처음이에요. 원래는 백예린 음악 같은 팝이나 R&B를 좋아했거든요. 록은 고교 때 좀 듣다 말았는데 이렇게 돌고 돌아 이 친구들과 다시 함께 록을 들으니까 왠지 흥미가 강하게 생기더라고요. 저에 대해 더 설명하자면, 그동안 박지윤 백예린 같은 가수의 세션 활동을 했고요. ‘캣츠’ 같은 뮤지컬에서도 연주를 맡았습니다.”

―이 대목에서 조니 씨에 대해서도 궁금해 하는 분들이 생겨요.

조니: “‘바이 바이 배드맨’을 열아홉 살 때 형석이와 함께 시작했어요. 그걸 쭉 해오다 중간 중간 세션 일도 했고요. (하드록 밴드) ABTB의 객원 기타리스트로도 활동했고요. 그러다 예린이 세션을 맡게 되면서 자연스레 여기까지 왔죠.”

●“…하지만 예린의 멜로디가 얹히면 다른 음악이 돼버리죠”

―앨범 제목이 담백해요. 그냥 ‘The Volunteers’.

예린: “10곡 중에 6곡 정도는 만든 지 2년 정도 흐른 노래죠. 4곡 정도가 새로운 곡인데, 그 사이에 저나 멤버들의 심경과 생각의 변화가 많아서 10곡을 다 묶어놨을 때 하나로 관통하는 주제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게다가 옛 밴드들 가운데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을 가진 이들도 많잖아요.”

―사운드가 예상보다도 더 세고 거칠어서 좀 놀랐어요.

조니: “사실 저는 더 세게 하고 싶었는데 다른 멤버들이 자제를 시켜줘서….”

형석: “록 밴드는 이렇게 하는 게 맞죠. 만들면서 강한 음악이라고 특별히 생각하진 않았어요. 록 시장 전체의 분위기로 봤을 때는 꽤 팝적이라 생각해요. 예린이가 프런트이니까 아마 더 세게 느껴질 수도 있을 거예요.”


―요즘은 록에 전자음악을 많이 넣는 것도 아주 자연스러운 경향인데 ‘더 발룬티어스’는 우직하게 하드한 기타 사운드를 뼈대로 해서 앨범을 만든 점도 의외였어요.


형석: “그러게요. 신시사이저는 앰비언트 역할로 아주 조금만 넣었어요.”

더 발룬티어스-백예린
더 발룬티어스-백예린
―1990년대 얼터너티브 록의 질감도 많이 느껴지더라고요.

조니: “1980~90년대 미국 얼터너티브 록이나 그런지 밴드들을 상상하고 기타 사운드나 리프를 만들려 했어요. 소닉 유스나 너바나 같은 팀들요. 제가 태어나서 처음 산 CD가 너바나의 ‘Nevermind’(1991년)였거든요. 하지만 그런 기타 리프와 사운드를 만들어놔도 결국 예린이가 쓴 멜로디를 붙여놓으면 아예 다른 음악이 돼요. (보컬) 멜로디는 다 예린이가 만들거든요.”

―그렇군요. 밴드로서 작업 프로세스가 궁금해지네요.

예린: “이를테면 첫 곡 ‘Violet’은 아예 형석 오빠가 트랙을 다 만들고 나서 저한테 멜로디를 맡긴 경우예요.”

조니: “4번 곡이 수록곡 중에 가장 마지막으로 만든 곡이었는데요. 우리 셋이서 연주만 하고 있었는데 예린이가 저기 앉아서 핸드폰을 하고 있는 거예요. ‘뭐하고 있지?’ 했는데 갑자기 5분 뒤에 ‘멜로디 만들었어’ 하며 노래를 부르더라고요. 기타 리프만 있었을 때는 제 리프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는데 멜로디를 붙이니 ‘됐다!’ 싶더라고요.”

치헌: “(10번 곡) ‘Summer’는 처음에 베이스라인만 있었죠.”

형석: “거의 힙합이었지. 흐하.”

●“록을 할 때는 젊을 때만 누릴 수 있는 것을 자유롭게 보여주자!”
더 발룬티어스-Jonny
더 발룬티어스-Jonny
―녹음할 때 많이 쓴 이펙터나 장비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조니: “원래 저는 ‘펜더’ 기타를 주로 치는데 이 앨범에서는 ‘깁슨 레스폴’을 주로 쳤어요. 곡들의 분위기와 잘 어울려서요.”

형석: “초기에는 가진 기타 앰프가 ‘오렌지’뿐이었어요. 그게 확실히 레스폴과 잘 묻어서 많이 쓴 것 같아요.”

조니: “전에 하던 밴드에서는 쓸 일이 별로 없었던 ‘퍼즈(fuzz)’ 이펙터도 많이 썼죠.”

―예린 씨, 록적인 곡은 언제부터 쓰기 시작한 건가요?

예린: “2017년 무렵요. 처음엔 제가 써놓고도 스스로 약간 헷갈리는 게 많았어요. ‘이런 멜로디가 원래 록에서도 쓸 만한 멜로디인가, 아니면 너무 팝 같은 멜로디인가?’ 그래서 오빠들한테도 많이 물어봤죠. 조니 오빠 말대로 제가 팝스러운 멜로디를 계속 써왔던 사람이어서 또 되레 멤버들이 만들어주는 사운드 위에서 이질적이지만 새로운 스타일로 잘 표현이 되는 것 같아요. 결론은요. ‘잘 나왔다!’입니다. 흐하.”

―이에 대한 ‘록잘알’ 오빠들의 의견은?

조니: “(예린이의 멜로디가 붙으니) 요즘 나오는 록 밴드 음악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악기들은 되레 더 예스럽게 가져가보려는 게 있었죠. 그래야 조화가 잘 될 거 같아서.”

형석: “예린이는 ‘너무 팝스럽지 않아?’ 하고 묻는데 제가 볼 땐 아니었어요.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더 해도 될 거 같은데?’라고 답해줬죠.”

치헌: “지금 딱 좋은 듯.”

조니: “한번도 ‘바꿔볼래?’가 없었어요. 그대로가 좋아서.”

치헌: “딱 좋아.”

예린: “이래서 밴드 합니다.”

―사운드 못잖게 가사에서도 상당한 분노가 느껴져요.

예린: “2017년, 2018년에 쓴 곡들에는 확실히 사회를 향한 분노가 있어요. 늦게 찾아온 사춘기처럼 제 머릿속에 이상한 게 많았나 봐요. 제 솔로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것만 보여드리자는 생각도 했죠. 팬이나 대중이 저를 떠올릴 때 원피스를 입은 하늘하늘한 예린, 페스티벌 예린…. 이렇게 많이 생각해주시는데 그런 것들을 많이 깨고 싶었나 봐요, 제가. ‘그거 나 아닌데….’ 록을 할 때만큼은 솔로 때의 이미지를 좀 버리고 지금 젊을 때만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자유롭게 보여드려보자는 생각을 했죠. 모든 노래가 다 실제 저의 분노를 담은 건 아니고요. 비유와 은유도 많아요. 어릴 적 철없던 제가 쓴 곡들과 최근에 쓴 곡들이 모여서 앨범이 조화를 잘 이룬 것 같아요.”

―5번 곡 ‘Radio’는 처음부터 끝까지 두 개의 코드만으로 구성한 점이 특이했어요.

예린: “저 혼자 두 개의 코드를 기타로 반복해 치면서 노래해 데모를 만들었죠.”

●“어떤 곡들은 가상의 영화 스토리를 머릿속으로 그리고 만들었죠”


더 발룬티어스-김치헌
더 발룬티어스-김치헌
―‘Radio’의 노래 가사 속에서 ‘Radio’가 의미하는 것은 뭘까요?

예린: “몇몇 수록 곡의 가사는 제가 머릿속에서 가상의 영화 스토리를 상상해 놓고 썼어요. ‘Radio’도 그렇죠. 이 영화(?)의 배경은 옛날 시골 마을이에요. 미국 남부에 있는…. 어떤 아이가 엄마랑만 자랐는데 믿을 것은 교회 밖에 없고 모든 게 차단된 상태에서 결국 즐거움의 의미로 존재하는 유일한 것은 라디오밖에 없는 거예요. 이걸 가지고 도시로 나아가서 그 즐거움을 전하는 내용인데, 그 과정을 가사에 그렸어요. 그 좁은 세상에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 즐거움을 주는 하나뿐인 무언가가 그 소녀에게는 라디오라는 얘기죠.”

―이야기를 들을수록, 음악을 들을수록 ‘더 발룬티어스’의 첫 공연이 기다려지는데요?

일동: “올해 안에, 그것도 아마 머잖아 할 거예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예린: “제 솔로 공연에서는 멤버들이 뒤로 가 있고 저 혼자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아 찜찜한 게 있었어요. 이번에 데뷔를 준비하면서, 합주를 하며 에너지를 정말 많이 받았어요.”

―예린 씨는 기타를 언제부터 쳤어요?

예린: “아버지가 밴드 보컬이셨어요. 기타도 치셨죠. 아버지가 어릴 때부터 조금씩 가르쳐줬어요. 그땐 손이 작으니까 제대로 배우지는 못했죠. ‘더 발룬티어스’ 데뷔를 위해서 본격적으로 멤버들에게 배웠어요. 정말 제대로 하기 시작한 것으로 치면 올해부터예요. 아직은 초보죠.”

형석: “저렇게 말해도, 재능 있어요. 잘 쳐요.”

―R&B 기반의 팝을 하다 록을 하게 됐어요. 창법과 발성은 어떻게 다르게 접근했나요?

예린: “솔로 할 때는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썼죠. 노래에 기교가 많다보니 테크닉에 신경을 써야 해서 녹음을 한 번에 끝낼 것도 여러 번 하고 했는데, 록 밴드 버전의 저는 조금 시원시원하게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은 넘어갔어요. 어떻게 보면 무성의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런 애티튜드까지 다 포함돼 있는 음악 장르가 록이라고 생각해요. 연주 소리도 크고, 쿨한 장르다보니 좀 신경이 덜 쓰이기도 하고요. 제 딴에는 확실히 다르게 하려고 노력하는데 결국 저는 한 사람이어서 목소리는 비슷한 것 같아요. 다만, 솔로를 할 때는 좀더 성숙한 목소리를 내려 노력하는 반면, 밴드를 할 때는 좀더 어리광부리는 스타일로! 좀더 ‘젊음의 맛을 보여주자!’ 하는 느낌으로요.”

―‘Radio’ 못잖게 첫 곡 ‘Violet’의 ‘violet’의 의미가 궁금해요. 정작 가사에는 ‘violet’이 한 번도 안 나오네요.

예린: “그냥 개인적인 소원이었는데, 여자 이름을 앨범에 꼭 한 번 들어가게 하고 싶었어요. 아마 음반에서 가장 분노가 가득한 곡일 거예요.”

―2번 곡 ‘PINKTOP’의 가사에는 미스터리의 ‘분홍색을 입은 남자’가 등장해요.

예린: “멤버들이랑 지내다 알게 된 사실인데, 오빠들이 핑크색 옷 입는 걸 민망해하거나 부끄러워하더라고요. 또 머릿속에서 혼자 영화 한 편을 그렸죠. 남자의 핑크 탑처럼 우리가 편견을 갖는 옷차림이나 행색들이 있잖아요. 하지만 결국 우리가 가고 싶은 길, 꿈을 위한 길을 걸어가고 있다면 자기가 하고 싶은 어떤 행색을 하든, 또 무엇을 하든 상관없는 게 아닌가라는 말을 건네고 싶었어요.”

―3번 곡 ‘Let me go!’는 아무래도 자유의지를 그린…?

예린: “이것도 영화 한 편을 머릿속에 그려봤는데요. 우리 밴드가 미국에 투어를 간 거예요. 공연 중간에 자유시간이 나서 컨버터블을 타고 로스앤젤레스 같은 데를 가보는 거예요, 멤버들끼리. 선글라스를 끼고 머리를 막 휘날리면서, 멋진 행인들을 바라보면서 모든 걸 내려놓고 질주하는 거죠!”

●언젠가는 국내외 록 페스티벌도 나가고 싶다, 언젠가는

더 발룬티어스-고형석
더 발룬티어스-고형석
―그 ‘Let me go!’라는 영화 속 밴드는 슈퍼스타 밴드이겠죠?

예린: “꼭 그렇지 않아도 좋아요. 아무리 작은 클럽을 도는 투어라 해도. 따뜻한 햇살 아래서 맘껏 놀고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면 돼요. 팬데믹 때문에 더 이런 가사가 나온 것 같아요. 빨리 나가서 공연하고 많은 걸 보여드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답답함 때문에요.”

형석: “투어 자체가 밴드의 목표는 아니지만. 아, 정말 해보고 싶긴 하네요. 해외 페스티벌도 나가보고 싶고.”

―예린 씨는 이런 머릿속 영화 얘기를 멤버들과 공유하나요? ‘자, 이런 느낌으로 연주해줘!’ 하는 식으로요.

예린: “아뇨. 놀릴까봐…. 흐하.”

―4번 곡 ‘Time to fight back in my way’에도 특별한 스토리가 있을 것 같은데요.

예린: “조니의 기타 리프 위에 제가 가사와 멜로디를 얹었어요. 그날 저희 셋(예린 조니 형석)이서 차를 타고 합주실에 같이 왔는데, 오는 길에 RATM(미국 랩 메탈 밴드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의 ‘Take the Power Back’이 나오는 거예요. ‘이 가사 너무 멋있는데! 힘을 다시 가져와야 해!’ 하고 생각하며 노랫말을 썼죠. 가사는 센데 노래는 비교적 잔잔한 편이네요.”

―센 노래로 치면 6번 곡 ‘Crap’이 만만치 않네요.

조니: “제일 하드한 노래 축에 속하죠.”

형석: “구성이 입체적인 노래예요. 일반적인 노래의 폼(form)을 잘 뒤틀어놓은 곡이라고 생각해요. 후반 작업이 끝난 뒤에 저는 이 노래가 제일 머리에 남더라고요. 평소에는 하지 않는 방식으로 만들었지만 또 자연스럽게 나온 느낌이라서….”

―그렇다면 라이브에서 가장 기대 되는 곡은 뭔가요?

치헌: “최근 합주했을 때는 ‘Let me go!’가 가장 에너지가 좋았어요. 뒤에 드럼 솔로도 나오고! 집중도가 흐트러질 새가 없죠.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 몰아쳐서. ‘Crap’도 비슷한 느낌으로 기대가 많이 돼요.”

―드럼 사운드에도 공을 많이 들였다고요?

치헌: “이번에 ‘C&C’와 ‘Q’라는 브랜드의 드럼을 추천받아서 몇 곡씩 나눠 연주했어요. Q는 (영국 밴드) 뮤즈 같은 팀이 쓰죠. 대중적인 브랜드는 아닌데, 엄청나게 록적인 사운드가 나오더라고요. ‘Let me go!’ ‘Crap’ 같은 곡이 Q의 사운드예요. C&C 역시 유명한 브랜드는 아닌데 Q와 또 색깔이 완전 달랐어요. 빈티지한 사운드랄까. 서스테인(잔음의 지속시간)이 좀 짧은 드럼이죠. ‘PINKTOP’ ‘Time to fight back in my way’ 같은 곡들에 썼어요.”


―형석 씨는 ‘바이 바이 배드맨’에서 건반주자였잖아요. 더 발룬티어스에서는 베이스기타를 맡았는데 어때요?


형석: “원래 중학생 때부터 베이스기타를 쳤어요. 안 놓고 꾸준히 연주는 했죠. 기타나 드럼에 비하면 비교적 연주의 집중도가 낮아도 소화가 가능한 악기라서, 한마디로 꿀 빨고 있죠. 흐하.”

―7번 곡 ‘Nicer’에는 또 어떤 영화가 한 편 들어가 있나요.

예린: “이 곡은 영화까지는 아니고요. 일단 ‘Violet’과 함께 제일 먼저 쓴 밴드 곡이에요. 어려서부터 모든 이에게 공손해야 해, 친절해야 해, 이런 말을 너무 많이 듣고 자라서 그것에 대해서 써보고 싶었어요. 굳이 그렇게 모두에게 친절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를 하는 노래죠.”

―오아시스의 갤러거 형제의 도움도 좀 있었던 건가요?

예린: “있었죠. 조금 막 살아도 되겠구나 하는!”

●모두가 여름의 팬은 아니군요!
―8번 곡 ‘Medicine’도 가사가 아리송합니다. 약이라….

예린: “이 노래도 약간 반항적인 가사가 있는 노랜데, ‘그래도 우리 가족에게 나는 약 같은 존재야’ 하는 내용입니다. 어떤 이에게 부당한 미움을 받는다고 해도, 저는 그런 귀한 존재이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겠다! 하는 마음입니다.”

―9번 곡 ‘S.A.D’는 이니셜로 표기가 돼있는데 무엇의 약자인가요?

예린: “Social Anxiety Disorder. 우리말로 하면 사회 불안 장애예요. 말 그대로 심적으로 불안한 상태를 그려본 곡이에요.”

―대망의 마지막 곡으로 ‘Summer’를 넣었어요. 혹시 모두들 여름을 좋아하나요?

치헌, 조니: “여름 좋아해!”

예린: “난 여름이 별로야.”

형석: “나쁘지 않은 듯.”

―모두가 여름의 팬은 아니군요!

예린: “따뜻한 느낌이어서 쓴 게 아닐까 싶어요. 제 경험도 담았지만 그 무렵에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봤거든요. 거기 나오는 과일, 햇살, 바다…. 풍경이나 색채가 너무 예뻐서 영향을 받았어요.

―‘띠옹~’ 하는 소리를 내는 악기는 혹시 시타르인가요?

형석: ”맞아요. 정확히는 가상악기로 만든 시타르 소리죠.“

조니: ”그게 신의 한 수였던 것 같아요. 원래는 기타만 가는 거였는데 아예 다른 느낌이 들어가 버렸어요.“

예린: ”시타르 덕분에 더운 느낌이 나요. 소리가 쨍해서.“


―자, 앨범을 대앨범을 강 쓱 훑어봤는데요. 음반 전체가 청자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가기를 원하며 작업했나요?

치헌: ”드럼만 봤을 때는 최대한 자연친화적인, 날 것 그대로의 사운드를 보여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전체적인 사운드 믹스는 형석이가 담당했으니까….“

형석: ”여러 아티스트들의 정규 1집을 보면서 느낀 게 있어요. 대부분 정규 1집을 만들 때는 관통하는 스토리 주제를 갖고 임하는 것보다는 당장 젤 잘하는 걸 다 집어넣는 경우를 많이 봤죠. 이런 것도 보여주고 싶고 저런 것도 들려주고 싶고…. 그러니까 모든 것이 약간은 과하게 들어간, 그런 앨범이 자연스레 된다고 생각해요, 1집이라는 게.

―장르로 보자면 개러지 록부터 드림 팝까지 여러 결이 느껴져요.

형석: “그런 장르를 모두 즐겨들으며 지내요. 어떤 틀 없이 저희가 즐기는 것을 다 넣은 셈이에요. 밴드의 방향을 미리 정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을 전부 넣어보자’인 거죠. 프로세스를 한다기보다 날것의 상태로 펼쳐놓는.”

조니: “멤버들이 음악을 워낙 다양하게 들어서 2집 때는 또 저희가 어떤 장르를 하고 있을지 몰라요. 드림 팝을 할 수도 있고 빡세게 하드록을 할지도 모르죠. 요즘 드는 생각은 굳이 밴드를 장르로 나눠야 하나 하는 거예요. 록 밴드면 그저 록 밴드인 거죠.”

―모든 인터뷰의 피날레죠. 밴드 ‘더 발룬티어스’의 목표와 꿈을 물어볼 시간입니다.

조니: “팬데믹이 빨리 끝나서 국내 록 페스티벌 무대에도 서고 해외 공연도 하고 싶습니다.”

예린: “록 신이 좀더 많이 부흥을 했으면 좋겠어요. 저보다 더 어린 친구들도 저희로 인해 다양한 음악을 접할 수 있으면 좋겠고요. 많은 밴드 분들, 특히 팬데믹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티스트들이 앞으로는 더 자유롭게 음악을 많이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록에 대한 편견. 있을 수 있죠. 저도 있었고요. 단순히 시끄러운 음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갤러거 형제만 봐도 왠지 막 무질서할 것 같고. 접하기 두려워하거나 편견을 가질 수도 있는데, 저희가 친근하게 다가감으로써 이런 것도 있구나 하는 것을 알리고 싶어요. 앞으로 다른 인디 밴드들과 홍익대 앞 작은 라이브 클럽의 무대에도 함께 서보고 싶습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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