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피는 정말로 물보다 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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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4일 22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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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는 물보다 진하다'고들 하지만, 사실 우리 몸엔 피보다 물이 훨씬 많습니다. 사람들이 피 귀한 줄만 알지 물 귀한 줄은 모르고들…."

참 재치 넘치면서도 의미심장한 말이죠? MBC 주말드라마 '반짝반짝 빛나는'에 나오는, 반짝반짝 빛나는 대사입니다. 이 드라마는 태어난 직후 산부인과에서 뒤바뀐 두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서로 상대방의 부모 밑에서 자라게 된 정원(김현주)과 금란(이유리)이 우연찮게 친부모를 찾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흥미롭게 다룹니다. 서울 평창동 부잣집에서 자란 정원은 신림동 고시촌의 허름한 식당 주인인 친부모를 찾아가고, 신림동에서 자라난 금란은 수백억 원대 재산가인 평창동 친부모와 함께 살게 되죠.

두 여인의 환경은 하루아침에 극과 극으로 뒤바뀌지만, 두 인물의 인생은 결코 '반전'을 맞질 않습니다. 왜냐고요?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 같은 마음을 가진 정원은 평창동이든 신림동이든 그 가족을 따스한 볕이 드는 양지로 만듭니다. 반면, 질투와 보상심리 탓에 스스로 피폐해져가는 금란은 만나는 가족마다 음모와 거짓으로 가득한 늪으로 만들어 버리죠. '가족의 진정한 의미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대해 이 드라마는 아름다운 답변을 잉태하고 있습니다. 진정 소중한 가족은 단지 핏줄을 공유해 이뤄지는 수동적 관계가 아니라, 사랑과 경험을 공유하고 행복을 함께 꾸려나가는 적극적 관계라고 말이죠.

日 애니메이션 ‘고 녀석 맛나겠다’의 한 장면.
日 애니메이션 ‘고 녀석 맛나겠다’의 한 장면.
왜 갑자기 드라마 얘기냐고요? 7일 개봉될 '고 녀석 맛나겠다'라는 희한한 제목의 일본 애니메이션이 이 드라마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언뜻 유치해보이지만 정작 보고나면 가슴이 펑 뚫리는 공허함과 행복감을 동시에 느끼게 되는 이 애니메이션은 육식공룡 '하토'의 아이러니한 숙명을 보여줍니다. 우연히 초식공룡인 어미에게서 길러진 하토는 성장하면서 굉장한 번민에 빠집니다. 풀을 뜯어먹고 사는 어미와 달리, 자신은 자꾸만 고기가 먹고 싶기 때문이죠. 결국 '어머니를 잡아먹을 지도 모른다'는 악몽에 시달리던 하토는 그 길로 무리를 도망쳐 나와 홀로 살며 다른 공룡들을 잡아먹고 삽니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요? 어느 날 길가에 버려진 공룡 알 하나를 툭 건드렸는데, 그만 알을 깨고 초식공룡 안킬로사우르스의 앙증맞은 새끼가 태어난 겁니다. "고 녀석 맛나겠다"며 한입에 먹어치우려던 하토. 하지만 "아빠, 아빠"하며 겁 없이 달려드는 녀석을 보고는 결국 녀석의 아빠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하토는 육식을 해야만 하는 자신의 본능과 힘겹게 싸워가면서 '맛있는' 먹잇감에 불과했던 새끼공룡의 멋진 아빠로 성장합니다. 결국 가족은 '종(種)'의 공동체가 아니라 '정(情)'의 공동체임을 깨달은 하토는 자신을 길러준 초식공룡 어미를 찾아가 뜨거운 재회를 하지요.

분명 피는 물보다 진합니다. 하지만 우리 몸에는 물이 피보다 훨씬 많습니다. 비록 같은 성(姓)을 쓰지 않더라도 정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고 영혼을 나누는 관계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가족 아닐까요?

이런 의미에서 지난 주 개봉해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트랜스포머 3'도 색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지구평화를 지키고 인류와 공존하려는 외계 기계종족 '오토봇'은 지구멸망을 목적으로 침투한 같은 기계족 '디셉티콘'과 일대 전쟁을 벌입니다. 오토봇의 우두머리인 '옵티머스 프라임'은 자신이 스승으로 삼아온 오토봇 종족의 정신적 지주 '센티넬 프라임'에 감히 맞서게 됩니다. 멸망한 자신들의 행성을 재건하기 위해 지구를 파괴하려는 센티넬은 옵티머스에게 소리칩니다. "나는 고향을 재건하고 우리 기계종족의 생존을 위해 인류를 이용하려 하거늘, 너는 왜 나를 배신하고 인간을 지키려 하는가?"

그러자 옵티머스는 이렇게 짧고도 강력한 답변을 합니다. "당신을 배신한 건 내가 아닙니다. 바로 당신 자신이지요. 이젠 자유가 있는 이곳(지구)이 우리의 고향입니다. 우리와 공존하길 원하는 지구와 지구인을 나는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보십시오. 한갓 기계조각도 동족을 극복하고 우리 인류와 가족이 되자고 합니다. 그런데 그깟 인종과 핏줄과 성씨가 다르다는 이유로 한 가족이 되지 못하는 우리야말로 얼마나 유치하고 졸렬한가 말입니다. 가족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고 지켜가는 것입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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