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내 이름은 김삼순, “드라마보다 재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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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16일 17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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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내 이름은 김삼순'
연극 '내 이름은 김삼순'
발렌타인 데이에 대학로를 찾는 것은 현명한 선택은 아니었다. 40대의 아저씨가 혼자 터덜터덜 대학로 거리를 걷고 있자니, ‘혹성탈출’의 원숭이 군상 속 인간처럼 고독했다.

커플과 초콜릿으로 미어터지는 대학로를 굳이 찾은 것은 연극 ‘내 이름은 김삼순(이하 김삼순)’을 보기 위해서였다.

알려져 있듯 이 연극은 2005년(벌써 6년이나 흘렀구나!)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MBC 동명의 드라마를 연극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당시 드라마의 주연은 김선아와 현빈이었고, 현빈은 그때도 까칠한 남자 주인공 역을 멋지게 소화했다.

서울 동숭동 상명아트홀 1관에 들어서니 이미 관객들로 빼곡하다.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겨우 제 자리를 찾아 앉았다.

관객들 손에는 작은 종이박스가 하나씩 들려있다. 발렌타인 데이를 맞아 극단 측에서 초콜릿을 선물로 준 것이다.

입장할 때 직원이 “사진 촬영 및 음식물 섭취를 삼가해 주십시오” 하길래 농담삼아 “이건 먹으라고 준 거 아닌가요”라고 말했지만 “안 되십니다”라는 쌀쌀한 답변만 들었다.

결론적으로 ‘김삼순’은 드라마에 꽤 충실한 작품이었다. 변변치 못한 외모, 학벌, 집안으로 결혼정보회사로부터조차 퇴짜를 맞은 파티셰 김삼순과 호텔 제과점 사장 장도영의 러브 스토리는 드라마 그대로이다.

그렇다고 드라마 스토리만 따라 가느라 숨이 가쁜 작품은 아니다. 일단 대사가 맛있다. 초연 작품이니만큼 앞으로 관객의 반응을 보면서 이러저러한 수정이 가해지겠지만, 지금 상태로도 배우들의 대사는 충분히 감각적이고 감칠맛이 난다. 보다 보면 “이 대사는 나중에 한 번 써 먹어야겠군” 싶어진다.

극의 중심은 당연히 ‘김삼순’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출신의 배우 김유진이 이날의 ‘김삼순’이었다.

전작 ‘옥탑방 고양이’에서 날씬하고 섹시한 ‘날고(고양이다)’ 역으로 남성 관객들의 가슴을 벌렁이게 만들었던 김유진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과연 놀랄 법한 180도 변신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조금도 섹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벙하고 시종일관 남자들에게 구박만 받는 노처녀 ‘김삼순’을 만나야 한다.

소극장 코미디물의 감초는 뭐니 뭐니 해도 멀티맨. 순식간에 바뀌는 캐릭터만 봐도 본전 생각이 안 나게 만드는 이날의 멀티맨은 안재영이 맡았다.

삼순이 엄마에서부터 일곱 살짜리 유치원생까지, 멀티맨의 끊임없는 변신은 ‘김삼순’ 이란 요리 위에 뿌려진 맛깔난 소스와 같다.

‘까도남(까칠한 도시남자)’ 장도영 역의 이동하의 연기도 점수를 주고 싶다. ‘김삼순’에 출연하는 배우 중에서 여성 팬이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진 이동하는 이날도 팬들에게 상당량의 초콜릿 선물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이 작품이 재미있는 것은 도무지 매력이라고는 눈 비비고 봐도 찾아보기 어려운 김삼순이 후반으로 갈수록 조금씩 ‘여자’로 보인다는 사실. 표정도 대사도 설정도 달라진 게 없지만, 말로 표현하기 힘든 은근한 매력이 배어 나온다.

극이 진행될수록 김삼순의 대사에 점점 공감하게 되고, 그의 행위에 정당성이 부여된다. ‘사랑’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더라도, 보다 보면 확실히 ‘정’이 가는 김삼순이다.

드라마의 열렬한 팬이었던 사람에게도, 드라마를 전혀 보지 않았던 사람에게도 꽤 재미있는 연극. 로맨틱 코미디의 부드럽고 달착지근한 속살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추천할 만하다.

그나저나 이날 김유진의 술 취한 연기는 정말 대단했다. 눈여겨 봐 주시길.

스포츠동아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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