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햇살이 스미는 베란다에 앉아 친구의 수다를 듣는 것처럼 편안한 음악이다. 유럽 곳곳의 사진과 일상의 단상을 읊조린 가사를 담은 앨범 재킷은 한 권의 여행기를 보는 듯하다. 싱어송라이터 김동률(36)과 그룹 롤러코스터의 기타리스트 이상순(36)이 듀오 ‘베란다 프로젝트’를 결성해 앨범 ‘데이 오프(Day off)’를 냈다. 김동률이 듀오 앨범을 낸 것은 이적과의 ‘카니발’ 이후 13년 만의 일. 2006년 8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음대로 유학을 떠났던 이상순은 휴학을 하고 앨범을 발표했다. 18일 서울 여의도의 소속사 뮤직팜 사무실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수록곡의 제목과 가사를 키워드로 해서 두 사람의 말을 정리했다.
○ ‘단꿈’: 징징대는 전화기도 쌓여가는 e메일도 모두 잊고 야자수 밑 그늘 아래 누워서…
2004년 사진 동아리에서 만나 친해진 두 사람. 이상순이 유학간 뒤 김동률은 암스테르담으로 세 차례 찾아가 이상순과 함께 음반을 ‘단꿈’ 꾸듯 만들었다. “제 방에서 음악 듣고 밥 해먹으며 함께 지내다 즉흥적으로 곡을 쓰게 됐어요. 시작은 장난 반 진담 반이었죠.”(이) “둘 다 한국을 떠난 상태라 소풍가는 느낌의 편안한 음악이 자연스레 만들어졌어요. 각자의 스타일은 내려놓은 채 옅은 도화지 위에 함께 그림을 그리는 식이었죠.”(김)
두 남자는 프랑스 파리, 독일 베를린, 포르투갈 리스본, 벨기에, 몰타 등을 함께 누볐다. 이상순은 “둘 다 클럽 가서 춤추는 스타일은 아니라 조용조용하니 잘 맞는다”고 말했다.
○ ‘벌써 해가 지네’: 아, 이런 날엔 여자친구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뭘 해도 재밌을 텐데
‘벌써 해가 지네’의 가사를 쓴 김동률은 “지어낼 수 있는 내용이 아니잖아요! 가사 너무 슬프죠?”라고 말했다. 두 남자 모두 여자친구가 없다고 했다. 둘이 붙어다녀 그런 것 같다고 하니 “맞다”며 맞장구를 쳤다. “주위에 싱글 친구가 많아요. 밥 먹자고 전화하면 바로 ‘좋다’며 나오거든요. 우리 중 한 명이 여자친구가 생긴다면 남은 한 명도 외로워 여자친구를 만들 수밖에 없을 거예요.”(김) ○ ‘괜찮아’: 닿을 듯했던 너의 꿈들이 자꾸 저 멀리로 아득해질 때…
20대부터 고정 팬을 확보했지만 두 사람은 간혹 초조함을 느낀다고 했다. 이상순은 “유학생활을 하니 혼자만 시간이 멈춘 기분이에요. 친구들은 회사 잘 다니고 음반도 열심히 내는데…. 어떡하나, 졸업이 2012년인데…”라며 한숨 섞인 웃음을 지었다. “남들은 네 살 때부터 피아노 쳐서 손가락이 미친 듯이 돌아가는데 내가 다시 피아노를 시작해도 늦지 않을까 고민한 적도 있어요.”(김) ○ ‘기필코’: 그토록 내가 바랐던 나의 꿈, 내 삶의 이유… 기필코 나는 해내고 말 테야
2006년 7월 롤러코스터 싱글 ‘유행가’를 끝으로 활동을 쉬고 있는 이상순은 “학교 갔다 집에 와서 숙제하고 시험 준비하는 단순한 삶을 살면서도 일상에서 음악을 진정 즐길 수 있는 여유를 배웠다”고 말했다.
김동률은 “솔로 앨범 만들 땐 진지한 발라드 위주여서 기분이 가라앉을 때가 많은 데다 일이 하나라도 틀어지면 패닉 상태가 되는데 이번엔 상순 씨가 다잡아 줬다”며 “음악 작업을 하면서 처음으로 즐거움을 느꼈으니 이 앨범이 음악 인생의 전환점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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