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이 사람은 왜] 언년이, 이다해를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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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1일 16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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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해의 화사하지만 굼뜬 이미는 현대적 분위기 추노의 옥의 티로 거론된다. 그러나 이는 추노를 잘못 해석한 탓이다.
이다해의 화사하지만 굼뜬 이미는 현대적 분위기 추노의 옥의 티로 거론된다. 그러나 이는 추노를 잘못 해석한 탓이다.


"모든 게 언년이 때문이다"

대길이 집안이 풍비박산이 난 것도, 언년이 오빠가 대길이 앞에서 자결한 것도, 심지어 절체절명의 순간 원손이 위험에 빠진 것도 모두가 언년이 탓이란다. '그녀의 옷은 NASA가 만든 특수 재질이기에 노숙을 하더라도 때 묻지 않는다'는 비아냥거림도 뒤따른다.

이 뿐만이 아니다. 남자 시청자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게 마련인 노출장면조차도 비난의 대상이 된다.

대부분의 사극에는 거의 의무적으로 여자 주인공의 목욕 장면이 등장했다. 시청률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얀 속곳을 입은 여자주인공은 어두침침한 부엌에 마련된 목욕탕 혹은 야밤의 개울가에서 윗저고리를 벗었고, 그 순간에 시청률은 최고치를 갱신하곤 했다. 이건 정해진 공식과 같은 패턴으로 배우가 결정하는 몫이 아니었다.

▶왜 언년이가 욕을 먹을까?

그런데도 유독 언년이(이다해)가 하면 곱지 않은 시선이 쇄도한다. 초반 논란을 불고 온 '겁탈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초록뱀미디어 '추노' 총괄 PD인 임훈 프로듀서는 "겁탈신에서 노출의 강도가 그리 심한 것이 아니었다"고 해명했고 이후 논란은 해프닝으로 끝날 것 같았다.

그런데 이에 놀란 KBS는 언년이의 평범한 노출신에 모자이크 처리를 하면서 사건을 이상한 방향으로 이끌어 버린다. 부러움과 찬탄의 대상이 되어야 할 언년이의 쇄골을 마치 '19금' 음란물로 전락시킨 것. 실제 모자이크 처리 이후 언년이의 몸은 음란한 시선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이제껏 이 같은 비련(?)의 여주인공이 존재했던가?

'명품 사극'으로 떠오른 추노에 대한 비평이 유독 언년이에게 집중된 상황은 매우 흥미롭다. 그 이유는 그게 두 가지로 나눠 생각 할 수 있다.

첫째는 드라마 '추노'가 쉽게 흠결을 찾기 어려운 작품이라는 해석이다.

실제, 추노는 빠른 극 전개와 철저한 고증, 그리고 최첨단 영상미학으로 무장해 고급 컨텐츠에 목마른 시청자들의 갈증을 해소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단 4회 만에 30%에 오른 시청률이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런데, 명품인 것은 확실하지만 드라마 전면에 드러나는 노골적인 '남녀상열지사', 즉 관음증적인 카메라 시선으로 인해 유독 그 중심인물인 '언년이'에게 비판이 집중된다는 얘기다.

일견 설득력이 있는 설명이지만 조금은 부족하다. 단순하게 '노출 논란' 때문에 현대미와 고전미가 적절하게 조화된 이다해에게 이렇게 많은 '안티'가 생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선정성 시비가 일었던 언년이 노출신. 제작진은 이후 노출신에 모자이크 처리했다가 시청자의 항의를 받고 다음 방송에선 모자이크를 풀어 또다시 논란이 됐다. KBS \'추노\'
선정성 시비가 일었던 언년이 노출신. 제작진은 이후 노출신에 모자이크 처리했다가 시청자의 항의를 받고 다음 방송에선 모자이크를 풀어 또다시 논란이 됐다. KBS \'추노\'


▶ 진실로 언년이는 '예쁘고 일 못하는 민폐 캐릭터'인가?

둘째는, 드라마 '추노'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현대적 캐릭터'인 반면 오로지 언년이만이 '전통적 캐릭터'에 머물고 있다는 해석이다.

실제 병자호란 이후 저잣거리를 다룬 사극 '추노'의 캐릭터들은 사극답지 않게 입체적이고 현대적이다. 근대 직전의 조선시대 노비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인지 현실의 굴레에 체념하지 않고 몸부림치는 모습이 생생하고 '근대'스럽다.

게다가 캐릭터 자체가 전통적인 선-악의 이분법을 넘어서고 있다. 악질적인 추노꾼 대길이가 대표적이며 극중에 등장하는 여성들 대부분이 자신의 계급에 맞지 않는 뛰어난 지혜와 배포를 겸비한 여장부에 가깝다. 그런데 유독 언년이만이, 이상하게도 전통적인 캐릭터에 머물러 있다. 시청자들은 이 점에 답답해한다. 왜 극의 흐름을 깨냐는 논리다.

언년이가 극의 흐름에 녹아들지 않고 튀는 모습은, 단순히 화려한 신부화장이나 때 묻지 않는 의상 때문만이 아니다. 추노가 현대적이고 빠른 흐름인데 반해 언년이에 시선이 가면 지나치게 굼뜨고 답답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남들이 다 하는 칼싸움은커녕 자신의 몸 하나 제대로 추스르지 못할 정도다.

마치 숨 가쁘게 돌아가는 월스트리트 금융거래소에서 미니스커트와 선글라스, 그리고 모피 코트를 입은 금발머리 아가씨가 덩그러니 서 있는 모양새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그녀의 쇄골이 아름답다고 해도 시청자들은 "속 터져서 못보겠다"고 항의해야 직성이 풀린다.

드라마 '추노'의 매력이란 선-악 이분법적인 구도에서 벗어난 입체적 캐릭터들을 다수 선보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언년이 만큼은 평면적 성격에서 복합적 캐릭터로 발전해 가는 성장형 인물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드라마 '추노'의 매력이란 선-악 이분법적인 구도에서 벗어난 입체적 캐릭터들을 다수 선보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언년이 만큼은 평면적 성격에서 복합적 캐릭터로 발전해 가는 성장형 인물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 언년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평생 전쟁터에서 남자들만 상대하다 보니 정감 있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합니다."(송태하)

"알아요. 여자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아요. 단 하나만 원할 뿐이에요. 사내가 변함없는 마음으로 늘 한결 같은 것…"(언년이에서 양반이 된 김혜원)--- '추노' 11회 중


그러나 정반대로 언년이의 관점에서 '추노'를 읽는다면 어떤 스토리가 될까?

언년이는 자신의 의지에 무관하게 역사속 비련의 여주인공이 됐다. 상전 대길이를 사모하긴 했지만 그녀가 무슨 대가를 바라고 사모한 것은 아니었다. 대길이 집안이 몰락한 것도, 전란 직후 양반으로 신분이 상승한 것 역시 그녀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시대를 초월한 단 한 가지 신조를 갖고 있었다. 다름 아닌 '지조'의 문제다.

첫 사랑이 떠난 지도 10년이나 됐다. 결국 어렵사리 얻은 양반 지위를 지키기 위해 정략결혼이란 전형적인 양반의 운명을 맞이한다. 그러나 언년이는 단호하게 현실을 거부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찾아나선다. 그 와중에 생명의 은인 송태하를 만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언년이는 과거의 '지조'란 패러다임을 버리고 새로운 시각을 정립해나간다. 다름 아닌 '성숙한 사랑'에 대한 욕망이다. 게다가 '여자의 지조'를 버리지 않고 '남자의 지조'를 강조하는 반전을 이끌어내기 시작한다. 드라마 후반부가 시작된 11회가 그 서막인 셈이다.

송태하와의 험난한 여정을 통해 평생의 연인 대길을 잊고 새로운 사랑의 감정을 받아들인 혜원. 이런 선택에 대한 후폭풍으로 치열한 현실을 경험한 그녀의 대답은 '사랑' 그 자체였다. 사랑이 진부하다면 진부하지만 '추노'의 절반은 따지고 보면 언년이의 '성장 드라마'로 읽을 수 있게 된다.

때문에 드라마의 결론이 삼각관계에 의한 파국인지, 혹은 해피엔딩일지는 중요치 않아졌다. 오히려 '남성들의 사극'을 표방하고 나선 '19금 드라마' 추노의 구조는 이다해의 진화에 따라 '남성적 사랑'에 대한 강렬한 반대축, 즉 '현실적이면서도 성숙한 사랑'으로 상승하게 된다.

드라마 추노는 일견 '남성들의 사랑'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오해받기 쉽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 와중에 여성의 욕망을 이야기 한다.
드라마 추노는 일견 '남성들의 사랑'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오해받기 쉽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 와중에 여성의 욕망을 이야기 한다.


▶ 구태의연한 남정네, 변화를 모색하는 여성성

현대적 사랑 영화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쉘부르의 우산'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때 열렬하게 사랑했던 청춘남녀는 이후 각자의 길을 가게 되고, 세월이 흘러 운명적으로 재회하게 된다. 낭만적 감독이라면 이 둘은 손을 잡고 뛰쳐나가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한 모습으로 관객의 기대를 철저하게 배신한다. 이것이 따지고 보면 지독하게 치열한 현대성인 셈이다.

언년이는 전근대적인 여성의 모습으로 드라마를 시작했지만 이후 가장 먼저 근대적인 사랑을 실천해나가는 인물로 변신해간다. 따지고 보면 언년이는 '추노'에서 허구 세계의 캐릭터가 아닌, 가장 21세기에 근접한 현실적인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는 셈이다.

변호할 거리는 한 가지 더 있다.

우리가 흥미롭게 여기는 기득권층의 권력 찬탈 음모나, 끊임없이 출세에 목마른 양반들의 이합집산, 그리고 칼싸움에 몰입하는 남정네들이 굼뜬 언년이보다 훨씬 더 구태의연한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O2/이 사람은 왜]구조 요망 민폐 캐릭터 언년이는 왜 밉상이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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