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가이의 변신? 저, 막 살던 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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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0일 03시 00분


영화 ‘파주’의 철거대책위원장 ‘중식’역 이선균

예전엔 웃기고 망가진 모습
진지한 역 맡으면 되레 웃어

광고는 연기생활의 보너스
연기변신 미룰 이유 못돼

16일 만난 배우 이선균은 영화 ‘파주’에 대해 “느리고 불투명한 안개가 자욱하지만 끝까지 집중하게 만드는 영화”라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16일 만난 배우 이선균은 영화 ‘파주’에 대해 “느리고 불투명한 안개가 자욱하지만 끝까지 집중하게 만드는 영화”라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드라마(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최한성’으로 연인에게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주던 이선균(34). 그가 힘겹게 삶을 꾸려가는 철거대책위원장 ‘중식’으로 변신했다. 29일 개봉하는 영화 ‘파주’(박찬옥 감독)에서다. 아내가 사고로 숨진 뒤 처제를 사랑하게 된 중식은 ‘사랑한다’는 직설화법 대신 “한번도 널 사랑하지 않은 적 없었다”는 이중부정으로 간신히 마음을 털어놓는, 무뚝뚝한 남자다.》‘로맨틱 가이’의 의외의 변신일까. 17일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만난 이선균은 깊게 깔리는 저음으로 “저, 사실은 막사는 놈이에요”라고 말했다. “로맨틱한 이미지의 역할은 내가 맡았던 역할의 10%도 안 된다”며 드라마 ‘하얀 거탑’이나 ‘커피프린스 1호점’이 오히려 자신의 연기인생에서 ‘변신’이었다고 했다.

“‘국화꽃 향기’에서 의사 역을 맡은 뒤 영화를 보러 갔는데, 제가 나오자 관객들이 쿡쿡 웃더군요. 시트콤 속 ‘웃긴 남(男)’에게 진지한 연기가 어울리지 않아 보였던 거죠. 그러니 이제 이 ‘샤방’해진 이미지를 어찌해야 할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1기 출신. 2001년 뮤지컬 ‘록키호러쇼’로 데뷔했다. 이후 시트콤 ‘연인들’에서 맡은 역은 우습게 망가지는 ‘균’. 그는 “연극하는 동기에게도, 같이 방송하던 동료에게도 떳떳하지 못했던, 어중간한 시절”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영화와 드라마 단역을 오가다 단막극의 문을 두드린 것도 그 무렵이었다.

“어정쩡하게 뜬 거죠. 마음 붙일 곳이 없었어요. 술값으로 쓴 카드값이나 메우자는 생각으로 단막극 ‘연애’에 출연했어요.”

그는 2007년 홍상수 감독의 ‘밤과 낮’에서 북한 유학생 역을 맡았다. ‘커피프린스 1호점’으로 인기를 얻을 때였다. 그는 “감정의 작은 파장까지 표현하는 연기에 갈증을 느꼈기에 리얼리티를 중시하는 홍 감독의 영화에 출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홍 감독의 영화 ‘첩첩산중’에도 10만 원만 받고 출연했다.

사진 제공 명필름
사진 제공 명필름
그렇게 감정의 미세한 파장을, ‘리얼리티’를 중시하는 그는 ‘파주’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가장 많이 했던 영화”라고 말했다. “모든 게 자욱하게 낀 안개 같았어요. 불은 꺼버리면 되는데 안개는 걷혀지지도 않고…. 제목이 왜 ‘파주’인가부터 처제인 ‘은모’를 언제부터 사랑하게 된 건지, 늘 질문을 던졌고, 힘들게 얻어낸 답으로 연기할 수 있었죠.”

처제에게 감정을 털어놓는 장면만 36시간 동안 찍었다는 그는 첫 정사장면을 찍은 소감도 털어놓았다. “저는 내심 떨고 있는데 상대역의 심이영 씨는 아무렇지 않은 듯 담담하게 연기하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이영 씨의 심장이 마구 뛰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컷’ 소리가 난 뒤에도 한동안 몸을 떼지 못했죠. ‘배우라는 직업이 이렇게 힘든 일이구나’를 깨달았습니다.”

이날도 그는 광고 촬영을 마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올해 5월 배우 전혜진과 결혼한 그는 경제력, 사회적 성취, 행복한 가정을 모두 얻은 광고 속 이미지에 한 발짝 다가서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광고는 연기 생활에 생기는 보너스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광고 속 이미지 때문에 연기 변신을 미룬다면 말이 안 되죠. 물론 이런 건 있어요. ‘너무 막가면 안 되겠지’하는 고민. 특히 술 마시고 시비가 붙을 때는 예전과 달리 한 번 더 광고 이미지를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하하.”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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