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를 실제처럼 포장한 ‘스캔들 2.0’

  • 입력 2009년 4월 9일 03시 01분


한 여성이 인터넷 쇼핑몰에서 모델 일을 하는 동거남의 사진에 익명의 악플이 올라온다며 TV 프로그램 제작진에게 추적을 의뢰한다. 남자의 뒤를 쫓던 카메라는 뜻밖에 남자가 몰래 바람을 피우는 현장을 잡아낸다.

지난달 30일 오후 11시 케이블 채널 tvN ‘스캔들 2.0’의 방영 내용이다. 프로그램은 홈페이지에 “사랑과 배신에 대한 실질적인 솔루션을 제공한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사례를 제보하고 싶으니 e메일 주소를 남기겠다” 등의 글이 올라 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실제 사례를 통해 해결책을 제시하는 솔루션 프로그램이나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아닌 드라마다. 방송 내용은 연출된 상황이고 등장인물은 모두 배우다.

프로그램은 등장인물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한다. 제작진이 집 안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는 장면을 방영하고 ‘관찰 ○일째’라는 자막도 내보낸다. 모두 연출된 것이다.

오문석 책임PD는 “‘스캔들 2.0’은 프로그램 작가들이 시나리오를 써서 허구의 이야기를 꾸며내거나 실제 사건을 상상으로 가공한 드라마”라며 “프로그램 시작 전에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만든 드라마’라고 공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시작된 뒤에는 드라마라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중간에 이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은 방송 내용이 실제이거나 시청자 사연을 재연한 프로그램이라고 오해하기 쉽다. 한 시청자는 재연 프로그램으로 오해해 “왜 재연이라고 고지를 하지 않는가”라고 의견을 올리기도 했다.

선정적인 소재나 화면 구성에 대한 지적도 나오고 있다. 프로그램은 거의 매회 자신의 친구와 바람을 피우는 남자친구, 옛 여자친구 등 두 명의 내연녀와 바람을 피우는 남편, 17세 어린 아내가 옛 남자친구와 불륜관계를 맺는 내용 등을 다룬다. 내연남을 누드 촬영하는 장면 등을 모자이크 처리해 내보낸다.

대중문화평론가 이문원 씨는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만들어진 극영화, 즉 ‘모큐멘터리’는 풍자나 다큐멘터리 장르 자체의 희화화를 위해 만들고 사실이 아닌 연출이라는 것을 관객에게 충분히 알린다”며 “‘스캔들 2.0’처럼 중간부터 시청하거나 잠깐씩 보는 프로그램을 다큐멘터리처럼 연출하면서 고지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은 시청자를 우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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