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보증금까지 털어넣는 무모함으로 만들었죠”

  • 입력 2009년 4월 3일 03시 02분


서울 난곡동 반지하방은 시나리오 집필실-세트장-스태프 숙소

해외영화제 7개 상 휩쓴

영화 ‘똥파리’ 양익준 감독

2006년 5월 서울 관악구 난곡3동. 손바닥만 한 볕이 들어오는 반지하방에서 시나리오를 썼다. 완성된 시나리오가 영화화되기까지는 모두 4개월. 월세방을 세트장 겸 스태프 숙소로 사용했고 제작비가 모자라 월세 보증금까지 털었다.

2억5000만 원의 제작비, 제작인원 20여 명으로 만든 첫 장편 데뷔작 ‘똥파리’(16일 개봉)의 양익준 감독(34·사진) 이야기다. 그는 2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갖고 “35년간 살아오며 머리가 아닌 맨몸으로 몰아 쓴 일기 같은 영화”라고 말했다.

“뭐가 됐든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어요. 그 통로가 제겐 영화밖에 없었던 거고요. 아마 글을 썼다면 소설 ‘똥파리’가 나왔을 거고, 가수였다면 ‘똥파리’ 1집이 나왔겠죠.”

자신이 주연 감독 편집 등 1인 3역을 맡은 영화 ‘똥파리’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뒤 17개 국제영화제에 초청을 받아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타이거상, 프랑스 도빌 아시아영화제 대상과 국제평론가상 등 5개 해외 영화제에서 모두 7개의 상을 받았다.

그는 “상을 받을 줄 상상도 못했지만 적어도 ‘우리는 영화에서 거짓말은 안했잖아’라는 자부심이 있었다”며 “우물쭈물하지 말고 갖고 있는 걸 모조리 태워버리자는 무모함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영화는 용역 깡패로 폭력을 휘두르며 세상을 등진 채 살아가던 상훈(양익준)의 이야기다. 어릴 적 엄마를 폭행한 아버지를 구타하기까지 하지만 여고생 연희를 만나 점차 변해간다.

군 제대 후 공주영상대 연예연기과를 졸업한 양 감독은 ‘품행제로’ ‘강적’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등 여러 영화에서 단역을 맡았고 2005년부터 단편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첫 단편 연출작인 ‘바라만 본다’는 그해 서울 독립영화제 관객상을 받았다.

갑작스럽게 쏟아진 관심이 부담스럽다는 양 씨는 차기작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눈빛이 달라졌다.

“두 달 전 술에 몹시 취해 혼자 길을 걷는데 길가에 맨홀이 보이는 거예요. 오로지 지상과는 상관없이 지하 맨홀 아래서 사는 13세 소녀들의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음, 그리고 보는 내내 펑펑 울 수 있는 영화도 만들어보고 싶고요.”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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