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말랑 스펀지? 오들오들 스펀지!

  • 입력 2009년 3월 26일 02시 58분


범죄재연 고정물 편성 선정성 논란

가족 시청 시간대인 21일 오후 7시경 KBS2를 켜자 멍이 든 채 야산에 버려진 여성 변시체의 끔찍한 얼굴이 화면 가득 클로즈업된다. 아이들은 ‘엄마’를 부르며 울먹인다.

KBS2 ‘스펀지2.0’(토 오후 6시 반)이 고정물로 방영하는 ‘범죄노트’가 잔혹하고 병리적인 범죄를 그대로 재연해 가족 시청 시간대의 소재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시청등급은 연령과 관계없이 모두 볼 수 있는 ‘전체 시청가’.

범죄노트는 21일 애정 결핍으로 발생한 두 범죄를 극화해 방영했다. 의처증이 있는 남편이 가출한 아내를 찾아내 야산에서 살해한 2005년 사건과 부모의 이혼으로 동생과 헤어진 여중생이 동네 꼬마들을 납치한 2002년 사건이었다.

범죄노트는 살해사건을 다루며 의처증이 있는 남편이 침대 위에 쓰러진 아내를 주먹으로 때리는 장면을 ‘퍽’ 하는 효과음과 함께 뿌옇게 처리해 내보냈다. 남편이 “너는 죽어서도 나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야”라며 아내에게 농약을 마실 것을 강권하는 장면도 방영했다. 남편이 아내에게 강제로 유서를 쓰게 해 자살로 위장하는 범죄수법도 묘사했다.

도입부 화면도 시청자들의 불안과 공포를 극대화하도록 구성했다. 야밤의 골목길 뒤쪽에서 들리는 휘파람 소리, 도망치는 피해자, 피해자의 앞에 갑자기 나타나는 범인의 모습을 차례로 방영했다. 이는 공포영화 등에서 흔한 편집기법이다.

또 납치사건 재연극은 그네를 타고 놀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는 범죄자의 시선으로 시작해 아이가 사라지고 흔들리는 그네와 바닥에 떨어진 인형을 보여줬다. 실제 범죄를 상상으로 극화하는 이런 연출 방식은 케이블 채널의 범죄 재연 프로그램과 유사하다.

범죄노트는 이날 ‘스펀지2.0’ 전체 방영시간 82분 중 30분을 차지했다. 제작진은 정신과 의사를 패널로 출연시켜 “애정 결핍이 여러 정신질환을 불러온다”는 메시지를 주긴 했지만 이를 위해 끔찍한 범죄를 소재로 잔혹한 장면을 재연할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연출 권경일 PD는 “애정 결핍이 심해지면 파국적 결말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 했다”며 “폭력적인 장면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진이나 기사로 대체하는 등 KBS의 자체 심의규정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김영미 팀장은 “청소년과 어린이가 같이 볼 수 있는 시간대에 공영방송이 범죄를 소재로 선정적인 재연 화면을 방영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모방범죄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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