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영’ 불똥 피한 KBS ‘낭독의 발견’

  • 입력 2009년 2월 9일 02시 59분


이젠 ‘재미의 발견’ 위한 투자를…

‘죽은 자식 OO 만지기’란 속담이 있다. 뒤늦게 후회하지 말란 소리다. 요즘 이 말은 방송가에서도 통한다. 괜찮다고 소문났던 프로그램이 하나둘 사라져 다신 볼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대표적 프로그램은 KBS 1TV에서 매주 목요일 밤 방영되던 ‘TV, 책을 말하다’. 2001년 5월 시작해 햇수로 9년을 맞던 1월 1일 327회로 막을 내렸다. 이 밖에 SBS ‘금요컬처클럽’도 지난해 종영했고, EBS ‘책으로 만나는 세상’ ‘한영애의 문화 한 페이지’ 등도 폐지 소식이 들려온다. 경기 불황으로 방송국 사정이 어렵다더니 직격탄을 맞은 건 교양프로그램들이었다.

이쯤 되니 걱정되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KBS 1TV에서 매주 금요일 밤 12시에 방영하는 ‘낭독의 발견’이다. 화려한 비주얼만이 주목받는 시대에 잊혀가는 낭독의 참맛을 일깨운다는 취지로 2003년 11월 시작해 여러 호평에 상도 많이 받았다. 별다른 사전공지도 없이 폐지됐던 어느 프로그램처럼.

다행히 ‘종영 통보’는 없었던 6일 밤 ‘낭독의 발견’을 보자. 오랜만에 TV에 고 김광석이 속했던 그룹 ‘동물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해 결성 20주년을 맞았던 이들이 들려주는 노래와 자신의 노랫말을 낭독하는 풍경. ‘변해가네’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널 사랑하겠어’…. 잔잔하면서도 아름다웠다.

하지만 솔직해지자. 미안하지만 재미가 없다. 일단 금요일, 한 주 동안 지친 몸으로 밤 12시를 기다리기도 쉽지 않다. “낭독을 통해 제3의 감각을 일깨우겠다”는 취지와 달리 온몸의 감각이 스르르 잠이 든다. 매주 비슷한 포맷과 형식도 보는 사람의 기대치를 반감시킨다.

교양프로그램에서 뭘 기대하느냐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좋은 정보를 전달하는 교양프로그램은 재밌으면 안 된다는 법은 없다. 최근 시청자들에게 주목받고 있는 TV 다큐멘터리들을 보라. EBS ‘한반도의 공룡’이나 MBC ‘북극의 눈물’ 등은 이전의 느긋하고 심심한 구성은 찾아볼 수 없다. 속도감 있는 진행과 독특한 구성으로 시청률 10%를 넘나들기도 한다.

물론 ‘낭독의 발견’의 가치를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방송이 살아남기를 바란다. 경기불황으로 예능프로그램도 ‘살 깎기’에 들어갔다지만, 이런 프로그램은 그 제작비 반의반만 더 투자해도 훨씬 매력적으로 바뀌지 않을까.

“과감하게 시간대를 밤 10시대로 앞당기고, 장기적으로 내다보고 투자한 게 다큐멘터리의 성공 요인”(윤미현 MBC 시사교양국 CP)이란 조언을 기억하길. 시청자는 좋은 프로그램을 더는 잃고 싶지 않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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