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 이상우의 행복한 아침편지]“이런게 자식복인가봐요”

  • 입력 2008년 11월 18일 21시 15분


11월 17일, 남편이 환갑을 맞았습니다. 그래서 남편 계모임 사람들이 같이 여행을 다녀오자고 했는데, 남편이 싫다고 그런 겁니다.

사실 남편하고 이 날 이때까지 살면서 물 건너 제주도 한번 가보지 못 했기 때문에 정말 가고 싶었습니다.

회비로 좀 보태고, 각자 40만원씩 걷어서 부부동반 여행을 가자고 하니까, 그 돈 아깝다고 싫다고 그러는 겁니다.

남편은 “요새 경제도 안 좋은디 누가 환갑을 챙긴당가? 여행은 난중에 가도 된께 애들이랑 밥이나 한끼 묵세. 그라고 날도 선선하니 마침 일하기 좋은디, 우리 부지런히 일해서 대출금도 갚고 좀 벌어 놓으세”라며 제안을 했습니다.

어찌나 속이 타던지… 남편 말마따나 요새 평균수명이 늘어나서 환갑잔치는 안 한다고 쳐도 그래도 여행은 갔다 올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여행 한번 가는 게 뭔 대수라고 그렇게 아끼는지…

영감탱이가 나이를 먹으니까 별걸 다 아낀다 싶었습니다. ‘그렁께 젊어서 모아뒀어야지. 농사지어서 가을 수매하면 윷 놓느라고 홀라당 날리고 장에 가서는 웬 종일 술 퍼마시고, 그렇게 젊어서 다 써버린 돈을 왜 이제와서 애끼는 거여. 에구구. 이참에도 여행 가기는 애시 당초 글렀구나’라고 생각하며 그냥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큰딸이 전화를 해서 “엄마, 아빠 회갑 때 뭐할 거야? 어디 여행 안가?”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야 느그 아부지가 여행 가자고 할 위인이냐? 안 그려도 모임서 갔다 오자고 혔는디 돈 없다고 안간다 카드라. 그냥 느들 하고 밥이나 한 끼 묵든지 해야제. 내 팔자에 뭔 비행기를 타 보겄냐” 했습니다.

그러자 딸애가 깔깔깔 웃으면서 “아이구 누가 왕짠돌이 왕소금 아부지 아니랄까봐. 그래서 엄마 또 속상했구나. 그럼 우리들이 대줄게요. 계모임에서 간다는 그 여행비랑 거기 가서 쓸 돈이랑 넉넉하게 뽑아봐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야 느그들이 뭔 돈이 있다고 그러냐? 하이고∼ 걱정 말어라∼ 여행이야 난중에 가믄 되재. 아무 걱정 말어야” 했더니 딸애가 즈이 삼남매끼리 모아둔 돈이 좀 있다면서, 2년 전부터 한 달에 2만원씩 모아서 150만 원 정도 있으니까 걱정 마시라고 했습니다. 하이고. 어찌나 기특하고 고맙던지…

제 딸애는 아빠한테는 당분간 비밀로 하고 일단 여행 간다고 모임에 신청해놓고, 나중에 아빠한테 얘기하라고 그랬습니다. 그나마 이런 자식들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렇게 딸과 자식들이 도와준 덕에 저는 얼마 전에 심장 두근두근 하면서, 비행기타고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시원하게 뚫린 바다를 보고, 농장에서 귤도 따보고, 조랑말도 타보고, 유람선도 타봤습니다. 귤도 세 박스나 사서 삼남매에게 택배로 부쳐줬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여행마치고 집에 왔는데도, 돈이 남는 겁니다. 그래서 라디오 고장 난 거 대신 새 걸로 하나 사고, 남편 원대로 대출금 갚는 데다가도 조금 보태고 그랬습니다. 정말 호사가 따로 없었습니다.

사람들이‘살면서 한번씩 자식 덕 보겄어’하면 ‘남편복도 없는데 뭔 자식복을 바래’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제가 그래도 자식 복이 있긴 있나봅니다.

어쩌면 이만큼 바르게 커준 것만으로도 자식 복이 넘치도록 많은 걸 텐데… 자식들 덕분에 좋은 추억도 만들고 참 기분이 좋습니다.

가을 여행도 너무 행복했습니다.

11월 17일. 남편 환갑도 다시 축하하고 싶습니다.

서울 영등포 | 유봉자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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