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강승원 음악감독 “18년째 가수들 ‘놀이터’ 만들고 있죠”

  • 입력 2008년 8월 26일 08시 04분


‘서른즈음에’ 만든 작곡가 출신·노영심 부탁 방송계 진출·취미로 시작한 일이 직업으로

“가수들이 신나게 노는 놀이터를 만들어 주죠.”

1991년부터 ‘노영심의 작은음악회’부터 ‘이문세 쇼’, ‘이소라의 프러포즈’, 그리고 ‘윤도현의 러브레터’까지.

KBS를 대표하는 네 음악 프로그램을 뒤에서 조용히 지킨 사람이 있다. 바로 강승원(50) 음악감독이다.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강 감독은 18년 동안 이 음악 프로그램에만 매달렸다. 원래 그는 김광석의 불후의 명곡 ‘서른즈음에’를 작사 작곡하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광고음악도 만든 작곡가이다.

매주 화요일 오후 1시 여의도 KBS공개홀에선 2TV ‘윤도현의 러브레터’의 리허설이 한창이다. 연출을 맡은 류명준 PD와 강 감독이 무대 위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다. 조용히 음악을 듣던 강 감독은 마이크를 잡더니 한 연주자에게 “악기의 소리가 작다”고 지적했다. 이어폰도 없이 시끄러운 음악 속에서 어떻게 그 작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안 들리는 사람이 더 이상한 거지”라고 한다.

6시간가량의 리허설이 끝난 뒤 대기실에서 강 감독 만났다. 그는 본 촬영이 들어가야 비로소 자신의 역할이 끝난다고 한다. 음악이 조율이 맞지 않거나 긴급사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노영심과의 인연으로 시작한 일, 이렇게 오래할 줄이야”

연출, 작가, 스태프 등 4개의 프로그램을 거쳐 간 사람만 수십 명이지만 강 감독만은 강산이 두 번 바뀌도록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1989년 작은 음악 스튜디오를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노영심이 찾아왔어요. 동물원과의 인연 때문에 알게 됐는데 곧 음악 프로그램을 하나 맡을 것 같다며 일을 도와달라고 했어요. 고민 끝에 그 때부터 음악 감독 일을 맡게 됐죠.”

한 가지 일을 이렇게 오래하면 지겹지 않았을까.

“취미처럼 시작한 일이 이젠 밥벌이가 돼 버렸어요. 일이 재미있으니깐 하지, 지금도 가수들이 무대에 서면 내가 더 떨려요, 하하.”

강 감독은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며칠 전 PD, 작가, 가수와 함께 회의를 한다. 이 자리에서 어떤 노래를 부르고 어떤 얘기를 나눌지 결정한다. 강 감독은 이 때 가수들에게 어울리는 노래를 추천하고 곡이 정해지면 연습을 시킨다. 이후 1차 리허설을 갖고 또 한번 스튜디오에서 본방송처럼 리허설을 갖는다.

얼마 전 ‘러브레터’가 300회 특집을 맞았다. 햇수로 6년이다. 감회를 물어보니 별거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는 건데 매일 하는 일 처럼 일상 같아요. 그래서 감회랄 것도 없죠. ‘이소라의 프러포즈’도 300회는 넘었는데, ‘러브레터’가 조금 있으면 더 길게 하는 셈이에요.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덤덤하게 보내는 일상 같은 겁니다.”

○“무대와 호흡하는 관객이 제일 중요한 손님”

강 감독은 음악 감독이 거창한 일을 하는 자리는 아니라고 말했다. 단지 가수들이 역량보다 더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주는 역할이라고 했다.

“가수들이 신나게 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어 주는 역할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놀이터가 되는 것은 내 손에 달린 문제가 아니라, 그 날 가수들과 관객들의 호흡이 가장 중요합니다. 관객과 가수들의 조화가 잘 어우러지면 그 날 무대는 대성공이에요.”

음악이 잘 준비되고 가수들의 컨디션이 최상이라고 해도 관객의 반응이 좋지 않을 때는 무대가 빛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노래 잘하는 신인 나왔을 때 가장 행복해”

지금은 가수 뒤에서 그들이 마음껏 능력을 펼칠 무대를 만들어주지만 그도 한 때는 그룹 ‘우리 동네 사람들’에서 활동했던 가수였다. 故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는 원래 ‘우리동네 사람들’의 노래다. ‘서른 즈음에’는 1990년 이후 노래 가운데 최고의 노랫말로 선정되기도 했다.

노래 잘하는 신인이 나왔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강 감독은 “음악시장이 과거와 달리 불황이다 보니 유명 가수보다 신인들의 자리가 좁아서 안타깝죠. 이런 상황에서 노래 잘하는 신인가수들이 나오면 귀가 번쩍 뜨일 정도로 기쁘다”고 말했다.

음악감독 입장에서 볼 때 “라이브가 아쉽다”라고 생각하는 가수를 물어봤다. “최근 한 남자가수가 출연해 오히려 이미지가 깎이는 손해를 봤다. 가수 소속사 측에서 판단을 잘 못한 것 같다. 최근에는 그 가수만 빼고 별다른 무리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최고로 노래를 잘하는 가수가 누굴까. 그는 이 의문에 “우리나라 가수 중에 노래를 잘하는 가수가 얼마나 많은데 그러느냐”며 손사래를 쳤다.

다만 “‘러브레터’에서 한번도 노래하지 않은 가수가 임재범이다. 꼭 한번 무대에 세워보고 싶다”고 했다.

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

사진 = 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관련기사]노영심·이문세·이소라·윤도현…강승원 감독이 본 4인4색 MC색깔

[관련기사]‘영원한 가객’ 김광석을 그리며…대학로서 12주기 추모콘서트

[관련기사]시청률 5% ‘…러브레터’의 존재이유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