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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5월 17일 07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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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을 비롯한 언론사 기자로 입사한 사람들은 입사 후 6개월 동안 '수습'이라고 불린다. 선임자는 '선배'라고 칭한다.
아직 훈련 받은 '기자'가 아니기 때문에 '수습기자'라는 호칭을 썼다가는 선배들에게 호되게 '깨지기'(혼나기) 십상이다.
'선배'라는 호칭에는 같은 부서 선배, 차장, 부장, 부국장, 국장 등 모든 임직원이 포함된다.
때로는 업무상 차장, 부장을 부를 때도 '님'자를 생략한다. 직급 자체가 존칭이라는 게 그 이유다.
입사한 뒤 6개월 동안은 이른바 기자 교육을 받는데 이중 하이라이트는 '사스마와리'(경찰기자)다.
강남, 중부, 마포, 영등포 등 서울지역을 몇 개 권역으로 나눠 각 구역의 경찰서 3, 4곳을 아침, 저녁으로 돌아다니며 경찰서에 접수되는 각종 사건을 취재해 '1진(취재구역 책임기자)'에게 보고한다.
1진이 결정하지만, 대개 보고시간은 오전 7시, 다음날 오전 2시다. 오전 7시에 보고를 하기 위해서는 늦어도 새벽 5시에 일어나 택시를 타고 각 경찰서를 돌아다녀야 한다.
경찰서 각 부서를 돌아다니며 접수된 사건을 취재하며, 경찰은 '순사' 또는 '형님'으로 부른다.
경찰이 없는 자리에서는 '순사', 직접 만나서 얘기할 때는 '형님'으로 부른다. 여기자들도 '형님'이라는 호칭을 쓴다.
1진에게 보고를 할 때는 대개의 수습들은 크게 긴장한다.
쏟아지는 1진의 질문에 제때 대답하지 못하면 드라마 상에서와 같이 '개XX' 'XX놈' 등의 욕설이 쏟아지기 일쑤다.
실제 한 신문사 수습 교육 과정에서 있었던 사례.
수습: "서울 OO 경찰서에 음주운전 한 건 있습니다."
1진: "이름이 뭐래?"
수습: "OO살 OO씨, 직업은 OO이고 거주지는 OO입니다. 유명한 사람은 아닙니다."
1진: "왜 마셨대?"
수습: "……."
1진: "야 임마, 너 취재를 어떻게 하는 거야? 15분 내로 다시 보고해."
얼핏 들으면 코미디 같지만 기자들이 이 같이 혹독하게 시련을 당하는 이유가 있다.
'의사는 칼로 사람을 죽이고 살리지만 기자는 펜으로 사람을 죽이고 살리기 때문'이다.
기사가 쓴 기사 한 줄로 인해 자칫 다른 사람에게 큰 피해를 입힐 수도 있기 때문에 사실 확인을 하고 또 하고 또 하는 게 체질이 돼야 한다.
'사실 확인'을 체득시켜 주기 위해 1진은 최대한 잠을 안 재우며 수습을 고생시키고, 이런 과정을 6개월 정도 지나고 나면 그 다음부터 수습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이름, 전화번호와 같은 기본적인 내용부터 각종 사건 사고의 자세한 부분까지 본능적으로 취재를 하게 된다.
수급기간 기자들은 1진으로부터 자기 이름을 듣기 어렵다. 대개의 호칭은 욕이다. 기자는 담당하는 분야에 따라 서민부터 대통령까지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누구를 만나던 '겸손함'을 잊지 말라는 뜻에서다.
수습 6개월 기간동안 병적이고, 혹독한 사실 확인, 욕설 등을 못 참고 간혹 그만두는 기자들도 있지만 대개의 언론사들은 이들의 사표를 수리한다.
'기자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6개월 과정을 무사히 끝내고 나면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사할 당시 자신감 넘치고 세상이 모두 내 것 같았던 다소 건방진 사회 초년병의 모습은 사라지고 어느새 나름 성숙한 기자로 다시 태어나 세상의 '진실'과 마주할 준비를 갖춘다.
MBC 수목 드라마 '스포트라이트'가 관심을 끄는 이유는 과거 각종 드라마나 할리우드 영화에서 그려졌던 종횡무진 활약하는 '화려한' 기자의 모습이 아닌 이처럼 고생하는 기자의 모습을 그리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기자는 "물론 드라마의 본질은 '허구' 이지만 최대한 '사실적 허구'로 이 드라마가 독자나 시청자들이 기자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성엽 기자 cp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