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강한 연기가 제 몸에 딱 맞죠”

  • 입력 2008년 5월 13일 02시 59분


드라마 ‘온에어’ 종영 앞둔 이범수

“안녕하십니까? 이범숩니다.”

허리를 살짝 굽히며 정중하게 내미는 손길에 절도가 있다. 15일 종영을 앞둔 드라마 ‘온에어’의 주인공 이범수를 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식당에서 만났다. 은근히 정장을 기대했으나 청바지 차림이다.

“TV에 하도 정장 입은 모습만 나오니까, 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요”라더니 곧 끼니를 걸렀다며 ‘닭 가슴살’ 샐러드를 주문한다. 헐렁한 재킷 안으로 단단한 몸매가 감춰지지 않는다.

서른여덟 살의 배우 이범수는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지금의 자리에 올라왔다. 1995년 영화 ‘개 같은 날의 오후’에서 그의 배역은 ‘경찰2’였다. 1996년 ‘고스트 맘마’에서 그보다 한 살 많은 배우 김승우가 주연을 맡아 최진실과 사랑싸움을 하고 있을 때 그는 ‘안경사’로 나왔다. 1997년 동갑내기 배우 이병헌과 그보다 두 살 많은 신현준이 주연한 영화 ‘지상만가’에서는 호프집 종업원 역이었다.

“요즈음엔 ‘댄디 가이 이범수’나 ‘이범수 트렌드 따라잡기’ 같은 기사도 나오더라고요(웃음).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잘생긴 외모의 스타 배우에게서 어딘가 이질감이 드는 것과 달리 저에게서는 동질감을 느끼시는 것 같아요. 제가 온에어 같은 드라마에서 멋진 역할을 연기하니까 보는 분들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것 같고, 그래서 더 친근한 거죠. 제가 서 있는 좌표가 (키가 크고 모델 같은 외모를 가진) 강동원 같은 배우들과는 다르잖아요.”

말투가 치밀하고 곧다. ‘태양은 없다’의 단발머리 사채업자 ‘병국’이나 “짜장면∼”이라는 한마디가 변태적으로 느껴지던 ‘오! 브러더스’의 조로증 아이 봉구 등 그가 영화 속에서 연기해온 개성 강한 캐릭터의 흔적은 이마의 한 줄 주름에서만 보일 뿐이다.

“과거 영화 속의 인물들은 개성이 넘쳤고 그걸 즐겼죠. 반대로 뽐내고 싶었지만 감추고 쟁여놨던 것을 드라마를 통해서 보여준 거고요. 배우의 개성과 존재감은 한 작품으로 완성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배우에게 내재돼 있는 것 아닐까요.”

앞으로도 개성 강한 인물 연기를 볼 수 있느냐고 묻자 “그럼요. 저 아니면 못하는 게 많죠”라며 웃는다.

“저는 배우는 ‘멋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거기에 모든 것이 들어 있죠. 압구정동 오렌지족을 멋지다고 하지 않잖아요. 제가 ‘태양은 없다’에서 연기한 병국이나 ‘짝패’에서 연기한 필호는 악당이고 야비하죠. 멀쩡한 이범수가 그런 역할을 연기하는 것이 멋진 거죠. 제가 병국을 연기하면 왜 이범수=병국이라고 생각하는지를 이해 못해요. 나의 실체와 연기 사이에 이동한 거리와 궤적을 보고 박수를 치기를 바라는데…. 보통은 길거리에서 눈에 뜨여 ‘너, 배우 해!’라고 해서 배우 되고 매니저가 사다주는 옷 입고, ‘너는 이런 역할 해라’ 하고 포장된 그런 사람이 멋진 줄 안단 말이죠. 저는 웃음이 나요. 거기에 동참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빛나는 조연 타입의 그가 스타덤에 오른 것은 극중 안중근(외과의사 봉달희)과 장기준(온에어) 배역의 덕을 본 것 아닐까.

“등장인물이 멋진 거지. 배역과 배우는 다른 거죠. 저는 배우가 멋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적인 면, 소신, 시대의 트렌드, 센스 모든 것을 다 포함해서 저는 멋지고 싶어요.”

어릴 적 명절 때 극장에서 본 허장강의 연기를 동경하기 시작해 첫 배역을 맡은 지 19년 만에 정상에 오른 그답다.

“대학교 1학년 때 운전면허를 따고 차를 실제로 몰고 나가는 게 그렇게 겁이 났어요. 이게 잘못하면 흉기가 되잖아요. 원래 성격이 그래요. 어머님 말씀 들어보면 걸음마 배우고 처음 일어설 때도 벽 짚고 일어났대요(웃음).”

신중한 꼬마 이범수는 앞으로 또 어디로 나아가려는 걸까. 음반 취입 얘기를 꺼내자 “당장은 계획이 없다”면서도 “먼 길 가다 차 한잔 마시고 갈 수 있겠죠”라고 말한다.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은 조심스럽지만 설레는 모험이죠. 실패는 인정할 수 있지만 시도조차 안 하는 것은 비굴하다고 생각합니다.”

백발노인이 되더라도 후배들 영화에 참여해 함께 어울리고 받은 출연료로 회식하고 싶다는 이범수, “좋은 책 한 권이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듯이 좋은 영화와 좋은 배우 또한 보는 사람들의 인생과 가슴속에 영원할 수 있다”고 말하는 그는 참 ‘멋진’ 배우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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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취재: 조종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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