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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4월 7일 21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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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만 들어도 충격이었지만 보고 나선 충격이 더 컸다. 봉순 씨가 청년과 열렬한 연애 끝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될 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봉순 씨는 청년을 일단 덮치기부터 했다.
물론 처음부터 딸의 남자친구를 좋아하진 않았다. 결혼한다고 했던 딸이 갑자기 집을 나간 후 청년이 힘들어하자 연민을 느끼는 듯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술에 취해 쓰러져있는 그를 데려다 주려고 번쩍 업은 봉순 씨는 모종의 스킨십을 경험한다. 그 때 '찌릿'했나보다. 청년을 방에 눕힌 봉순 씨는 급기야 마음이 확 동한다.
사회적으로 아줌마는 '욕망이 없는 존재'로 인식된다. 엄마들은 '원래 맛있는 음식도 별로 안 좋아하고 예쁜 옷이나 비싼 화장품 같은 데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우리의 엄마들이 하물며 섹스 따위를 원한다고? 상상도 못할 일이다. 어른이 된 지금도 과거에 엄마가 그런 과정을 통해 아이를 낳았다는 것을 못 믿겠다. 엄마는 그냥 '우리 엄마'일 뿐이다.
오점균 감독은 TV에서 효부상을 받는 아줌마들의 표정에서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 같은 쓸쓸함과 묘한 슬픔'을 느꼈다고 했다. 물론 그 분들의 인생을 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저 인간으로서의 모든 본성을 참으며 남을 위해서만 살아 온 그들에게 대리만족을 주고 그들을 위로해주고 싶었단다. 그래서 '아줌마의 욕망'이 승리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에서 봉순 씨는 남편과 한 이불 속에서 자다가 갑자기 소리친다. "미안해 여보, 나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 사랑에 빠진 봉순 씨의 얼굴은 뽀얗게 피어오른다. 행복해 보인다. 어쩌면 살아 온 세월의 깊이만큼 사랑도 더 잘 할지 모르겠다.
'상식적인' 드라마의 결론이라면 불륜녀는 파멸해야 한다. 그러나 아줌마들의 편을 들어주려고 의도적으로 불륜을 미화한 이 영화의 결말은 봉순 아줌마 뿐 아니라 모든 동네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오 감독은 박진표 감독의 화제작 '죽어도 좋아'(2002)보다 훨씬 전에 이미 단편영화 '단풍잎'(1998)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육체관계를 다루었다. 그는 나이와 상관없이 모든 인간에게 그런 욕망이 있고, 그것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공감을 표하면서, 마음속으로 계속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감독님의 어머니나 부인이라도 괜찮겠냐?"고.
"뭐…처음에는 가정을 지키라고 하겠지만 나중엔 도와줄 것 같은데요. 일생에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기회는 몇 번 안 되잖아요."(오 감독) "…도인(道人)이시네요…."(기자)
아줌마의 욕망에 지지를 보내며, 곰곰이 생각했다. 내 가족의 일이면 과연 어떨까.
…엄마, 이번 주말에 '경축, 우리 사랑' 보여드릴게, 그냥 '대리만족'하심 안 되나요?
채지영기자 yourca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