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기자의 무비홀릭]느릿한 말투 속 섬뜩한 독기…‘짝패’

  • 입력 2006년 6월 22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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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짝패’(18세 이상 관람가)를 본 관객들은 인상적인 요소로 2가지를 꼽는다. 하나는 고의적으로 스타일을 증발시켜 버린 듯한 ‘무규칙 이종 액션’이며, 또 다른 하나는 변화무쌍하게 쓰이는 충청도 사투리다. 특히 관객에게 유머러스한 동시에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건 충청도 사투리다. 영화의 주 무대가 충청도의 가상도시 ‘온성’인 데다가 주연배우인 정두홍(부여), 이범수(청주), 그리고 배우 각본가 감독을 겸한 류승완(아산)이 모두 충청도 출신이다. ‘짝패’는 느릿한 충청도 사투리가 얼마나 ‘살벌한’ 감정의 기복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영호남 사투리보다도 강력한 ‘짝패’ 속 충청도 사투리의 스펙터클을 용례(用例)별로 살펴본다.

▽허허실실(虛虛實實)의 진수=죽마고우이자 아내의 오빠인 왕재를 살해한 배신자 필호(이범수). 그는 충청도 사투리가 갖는 순박한 이미지를 이용해 자신을 허점투성이의 순진한 인간인 양 위장한다. 말끝마다 “∼해유” “∼하는겨”와 같은 ‘늘어지는’ 어미를 사용함으로써 상대로 하여금 경계심을 잃게 만드는 ‘마술’을 부린다.

“왕재는유(말이죠), 에? 지(저의) 여동생 남편이기 이전에 지 둘두(둘도) ㅱ는(없는) 친구유(친구에요). 에? 내가 가족이 아니믄 누가 가족이유, 참….”(필호)

게다가 필호는 왕재의 죽음을 조사하러 온 친구이자 형사인 태수(정두홍)에게 한가하고 뜬금없는 얘기를 꺼내 딴청을 피우며 스스로 경황없는 인물처럼 보임으로써 상대가 자신을 얕잡아 보도록 만든다.

“히히. 넌 아직도 애덜(애들) 잡아다가 줘 패믄서(쥐어 패면서) 자백 받고 그러냐?”(필호)

“요샌 마 시상(세상)이 워떤(어떤) 시상인디. 애덜 수갑이라도 꽉 쪼일라믄(조이려고 하면) 지랄 옘병(염병)들을 떨고…. 취조실 들어가믄 아주 상전이여, 상전.”(태수)

“그런 거만 보믄 증말(정말) 우리나라두 확실히 선진국 대열에 낀겨, 어? 왜 테레비(텔레비전) 봐도 미국 형사들은 왜 총 쓸 일 특별히 없으믄 과학수사나 왜 고도의 심리적인 그 대화로 왜 기가 맥히게 잡아내잖어? 어? 우리 어릴 적에 콜롬보만 봐도 상당햐(상당해), 수준이 틀려.”(필호)

▽언중유골(言中有骨)의 진수=고리대금업을 하는 필호는 마을 청년회장을 목욕탕으로 납치해 꿔간 돈을 갚으라고 협박한다. 해결사 살수와 필호는 농(弄)을 섞은 느릿한 충청도 사투리를 주고받으면서 청년회장이 극도의 심리적 불안을 느끼게끔 옥죈다. 필호와 살수는 청년회장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도 목적을 달성한다.

“(청년회장 앞에서 칼을 갈면서) 새끼(손가락)부텀 짤라유, 엄지부텀 짤라유?”(살수)

“새끼가 나아, 엄지가 나아? 어? 엄지로 해보지, 뭐….”(필호)

“하긴 뭐, 어차피 다 짤라버릴 껀디 아무려면 워뗘(어때)? 아예 그냥 쌔빠닥(혓바닥)을 짤라버리는 건 워띠유?”(살수)

“첨부터 너무 숭악(흉악)스럽잖어…. 왜 바뻐서 그랴? 오늘 따블 뛰어?”(필호)

▽외유내강(外柔內剛)의 진수=필호가 왕재는 물론 자신의 어머니와 형을 살해한 사실을 알게 된 후배 석환(류승완)은 필호에게 전화를 걸어 의미심장한 선전포고를 한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석환과 필호는 직접적인 분노의 표현을 일절 배제한 채 ‘평화로운’ 충청도 사투리를 통해 살기 섞인 증오를 교환한다.

“여보세요.”(필호)

“나유(나에요). 석환이.”(석환)

“어어, 야. 엄니(어머니) 장례는 잘 치룬거여? 어? 내가 경황이 없어 갖고 가보질 못했네. 내가 부주는 많이 했는디?”(필호)

“마음만 받을게유. 이제부텀 전쟁이유.”(석환)

“뭐 열 받는 일 있는 게비다(것 같다). 어? 왜 그랴, 무섭게….”(필호)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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