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세상]애니메이션 4편-개성 뚜렷한 한국영화 맞불

  • 입력 2004년 12월 22일 16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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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울의 움직이는 성
하울의 움직이는 성
《초중고교의 겨울방학 시작과 함께 본격적으로 대목을 맞은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의 극장가. 올 12월은 예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용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막상 리그가 시작되자 예상과 사뭇 다른 양상이다. 우열을 쉽게 점치기 어려운 혼전인 것. 가족 단위 관객의 싹쓸이를 노리는 애니메이션과 월드스타를 앞세운 블록버스터가 맞붙는 가운데, 개성 강한 한국영화의 도전도 만만치 않다.》

● 애니메이션 사천왕(四天王)

출발은 픽사의 초능력가족 ‘인크레더블’(15일 개봉)이 빨랐다. 그러나 1주일여 만에 추격에 나선 ‘폴라 익스프레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상 23일 개봉)에 언제 덜미를 잡힐지 알 수 없는 일.

북극행 급행열차를 모는 것은 얼굴과 몸에 210개의 센서를 붙이고 ‘퍼포먼스 캡처’라는 최첨단 방식으로 1인 5역을 한 할리우드의 톱스타 톰 행크스다.

그러나 삐그덕 삐그덕 마법사 하울의 성(城)을 운전하는 63세 노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내공이 뿜어내는 에너지를 피해갈 수 있을까. 노파의 몸에 깃든 소녀의 영혼과 그를 사랑하는 꽃미남 청년 마법사라는 설정은 첨단 애니메이션 기술만으로는 결코 흉내낼 수 없는 삶에 대한 울림을 준다.

세 애니메이션이 엎치락뒤치락 겨루기로 기운이 빠질 때쯤 슬그머니 등장할 ‘샤크’(내년 1월 7일 개봉). 인상만 험했지 채식주의자인 상어와 거짓말로 벼락출세한 수다쟁이 작은 물고기가 과연 ‘어부지리’를 얻게 될까?

애니메이션에 밀려 아예 명함도 못 꺼내는 크리스마스용 가족영화 쪽에서는 미남스타 벤 애플렉이 조용하고도 기괴한 가족을 끌고 나타나 외로이 ‘서바이빙 크리스마스’(24일 개봉)를 외친다.

● 영웅과 스타들의 스펙터클

“난 일본이고 조선이고 그런 거 몰라. 난 역도산이고, 난 세계인이다”라고 영화 속 ‘역도산’(15일 개봉)은 말했다. 대사 그대로 ‘역도산’은 세계의 강자들과 한판 승부를 겨룰 운명. 인간으로 태어났으나 신(神)으로 기억되는 영웅 ‘알렉산더’(31일 개봉). 스무 살에 왕이 돼 서른세 살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문명세계의 90%를 정복했다는 이 영원히 늙지 않는 영웅을 ‘제2의 브래드 피트’로 일컬어지는 콜린 파렐이 연기한다. ‘내셔널 트레저’(31일 개봉)는 베스트셀러 ‘다빈치 코드’류의 지적인 게임과 ‘인디아나 존스’가 보여줬던 모험 활극의 하이브리드 영화. 한국인 아내와 결혼한 뒤 좋아서 입을 다물지 못하는 니컬러스 케이지가 보물사냥꾼 역을 맡았다.

톱스타들이 떼로 뭉쳐 덤빈다면 흥행 스코어는 한순간에 뒤집어질까? 조지 클루니, 맷 데이먼, 브래드 피트, 줄리아 로버츠, 앤디 가르시아, 거기에 더해 캐서린 제타 존스까지 스타들이 총출동하는 ‘오션스 트웰브’(내년 1월 7일 개봉)는 흥행 판도를 못 뒤집으면 자존심이 상해서 스스로라도 뒤집어져야 할 영화.

용호상박의 힘겨루기에 홍콩의 흥행메이커 저우싱츠(周星馳)가 뜻밖의 웃음 파열구를 내며 인기몰이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쿵푸허슬’(내년 1월 13일 개봉)에서 그는 불의를 보면 반드시 참는 소심한 건달 싱이 되어 쿵푸 고수들과 함께 한국시장에 돌아온다.

● 복병, 한국영화

줄곧 지적이고 섬세한 느낌의 미남배우였던 이성재. 그러나 ‘신석기 블루스’(30일 개봉)에서 그는 마우스피스 같은 뻐드렁니 분장에 깍두기 머리를 한 신석기 변호사로 변신한다. ‘꼴찌부터 일등까지 우리 반을 찾습니다’의 황규덕 감독이 오랜만에 ‘철수♡영희’(내년 1월 7일 개봉)를 들고 나타났다. 초등학교 4학년 말썽꾸러기 철수와 야무진 영희의 사랑 만들기.

얼굴 없는 수호자 ‘키다리 아저씨’(내년 1월 14일 개봉)에게 사랑의 편지를 보내는 순진한 방송작가 차영미(하지원). 요즘 들어 우연 치고는 너무나 자주 이상형 남자인 김준호(연정훈)와 마주치는 이유를 키다리 아저씨는 아실까?

여자들의 치마속이 궁금했던 소년들에 이어 ‘몽정기 2’(내년 1월 14일 개봉)에서 성적 호기심의 병을 앓는 것은 소녀들이다. 극성스러운 10대 소녀들 앞에 제물로 던져진 인물은 섹시한 여자만 보면 자기도 모르게 방귀를 뀌는 남자 교생선생님 이지훈….

● 숨은 보석들?

흥행작들의 각축에서 벗어나 차분히 호흡을 고르고 싶다면 배우이자 감독인 아네스 자우이가 성악 선생님이 되어 17세기 작곡가 몬테베르디의 노래를 부르는 새 영화 ‘룩앳미’(24일 개봉)에 귀 기울여 볼 만하다. 때론 말이 전하지 못하는 진심을 노래가 대신할 수도 있는 법이다. 만약 당신이 망가진 라디오, 약간의 음식, 그리고 말이 통하지 않는 에스키모 소녀와 함께 북극에 불시착했다면 당신은 그 순간부터 무엇에 의지해 삶을 이어나갈 것인가. ‘스노우워커’(내년 1월 14일 개봉)는 인생의 한겨울을 사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묻는다.

정은령 기자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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