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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5월 13일 18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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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저분하거나 무례한 것으로 여겨졌던 수염이 남자의 매력 포인트로 떠오르고 있다. MBC 드라마 ‘불새’의 에릭, SBS ‘폭풍 속으로’의 김민준이 수염을 기르고 있다. 6월 8일 첫 방송하는 SBS 주말극 ‘파리의 연인’에서 이동건도 마찬가지다.
젊고 세련된 감각과 카리스마를 강조하는 패션이나 정보기술(IT)의 CF도 예외가 아니다. 의류브랜드 ‘마인드브릿지’의 이정재, LG-IBM 노트북 PC ‘X-Note’의 정우성도 수염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다. 오리온 ‘오징어땅콩’의 이동건은 수염으로는 특이하게 ‘귀여운 이미지’까지 선보인다.
○ 가수 에릭 등 수염 길러 이미지 바꿔
![]() 어린애 같던 그가 수염으로 남자가 됐다. 콧수염과 턱수염을 2∼3mm씩 기른 스타일. 귀에서 턱에서 이르는 선이 날카로워 특히 돋보인다. 털색이 옅어 거칠면서도 섬세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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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속으로’의 김민준은 풍운아 김현태 역을 위해 턱수염과 콧수염이 연결되지 않도록 매일 직접 다듬는다. 그는 “풍운아의 이미지에 어울리게 수염을 길렀다”며 “하지만 수염 이미지만 각인되면 연기자로서의 폭이 좁아질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에릭은 실제 나이(25세)보다 7세 많은 ‘서정민’ 역을 연기하기 위해 수염을 기른 경우. 그는 “매일 다듬어야 하는 게 좀 불편하지만 수염 기른 모습이 꽤 괜찮은 것 같다”고 자평했다.
수염 바람은 온라인에서도 대중화되고 있다. 온라인 수염동호회 ‘디지-털’(디지게 멋진 털을 사랑하는 사람들·http://digi-tal.cyworld.com)은 “잘 생긴 연예인에게만 수염이 어울린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며 수염 대중화를 주도한다. 회원들은 다른 사람이 기른 수염을 평가하거나 수염 기르는 방법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는다. 회원 관리가 엄격한 이 동호회 회원 중 절반이 여성인 것도 특이한 점.
요즘 수염은 덥수룩한 구레나룻이 아니라 콧수염과 턱수염을 짧게 다듬는 게 일반적이다. 특별한 명칭은 없고 ‘디지털’ 회원들은 수염이 나는 부위에 따라 번호를 붙여 부른다.
![]() 수염이 어울리는 선 굵은 얼굴을 가졌다. 밀도가 높고 색이 짙은 1∼2m의 수염은 자연스러운 터프함을 강조한다. 수염이 얼굴에 무게를 더해주는 타입이다. 사진제공 SBS |
최근 수염 바람의 기폭제는 지난해 MBC 사극 ‘다모’의 장성백으로 나왔던 김민준으로 꼽힌다. 김민준은 혁명을 꿈꾸는 장성백의 풍운아적 기질을 강조하기 위해 수염을 길러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은 바 있다. 또 영국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과 미국 배우 브래드 피트 등 외국 스타들의 영향도 적지 않다.
그럼 수염이 젊은층에선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을까.
젊은이들은 수염을 자유와 세련미의 코드로 읽는다. 자유직과 전문직, 예술인들이 수염을 많이 기르기 때문이다. 특히 기성세대에 대한 ‘세련된 저항’과 개성의 표현으로 해석한다.
LG애드 류효일 부장은 “젊은층을 위한 노트북 ‘X-Note’ 광고의 메시지는 ‘이것은 멋있다’는 것”이라며 “비즈니스맨의 노트북인 ‘Thinkpad’ 광고라면 정우성에게 수염을 깎으라고 요구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꽃미남 선호’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분석도 있다. ‘오징어땅콩’ CF를 기획한 리앤DDB 유성은 국장은 “매끈한 꽃미남보다 터프가이적 요소를 덧붙이기 위해 수염을 기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강대 대학원생 김고은씨(25·여)는 “점점 여성스러워지는 남자들에게 수염은 남성 표현의 마지막 보루로 비치는 듯하다”고 말했다.
![]() 밀도가 낮고 범위가 좁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턱선이 약해 맨 얼굴이 나을 것 같으나 얼굴 살을 빼 갸름해진 뒤에 수염을 기르면 더 멋있어 보일 듯하다. 사진제공 오리온프리토레이 |
○ 꽃미남 선호에 대한 반작용
책 ‘털: 수염과 머리카락을 중심으로 본 체모의 문화사’(다니엘라 마이어, 클라우스 마이어 공저)는 수염의 이미지를 힘과 성적 욕망, 섹시함으로 꼽는다. 중세 로마가톨릭교회는 순결의 의미로 성직자들에게 수염을 금지시켰으며, 20세기 좌파 지식인들은 저항의 의미로 수염을 길렀다.
한편 짧은 수염을 가진 남자와의 키스는 어떨까. 한 여성은 “입술 주위가 따갑고 빨개질 정도로 아파서 적응하기 어렵다”면서도 “머리카락에서 샴푸냄새가 나듯이 수염에서 스킨로션 향기가 나서 좋다”고 말했다. (도움말=‘디지-털’의 클럽장 한영석씨 등)
조경복기자 kath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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