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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4월 4일 18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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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방송 PD들의 모임인 PD연합회가 방송위원회 보도교양 제1심의위원회를 겨냥한 성명서다. 심의위가 지난달 31일 KBS 등 지상파의 탄핵 방송 편파 시비와 관련해 “신중히 해달라”는 권고를 내리자, 이 같은 막말로 비난한 것이다. KBS 노조는 이 위원회에 대해 “조중동의 해우소(화장실)를 자임한다”고 한 적도 있다.
과연 이 말들을 양식 있는 방송 관련 단체들이 했을까 싶지만, 언론사에 배포된 성명서를 그대로 인용했다.
| ▼관련기사▼ |
- 방송위 “TV 탄핵방송 신중히 해야” 권고조치 |
최근 탄핵관련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막말을 그대로 내보냈다가 취지를 제대로 전달하기는커녕 갈등을 조장하는 경우가 잦다.
MBC ‘신강균의 뉴스 서비스 사실은…’은 탄핵찬성 집회에서 사회자가 “만약에 방송에서 제가 이렇게 외칩니다. 고등학교도 안 나온 여자가 국모로서 자격이 있습니까. 이렇게 얘기하면…”이라고 말하자, ‘만약에…외칩니다’와 ‘이렇게 얘기하면’을 뺀 뒤 영부인의 학력 비하와 욕설 부분을 부각시켰다가 논란에 휘말렸다. 이 프로그램에서 한 출연자는 “요즘 이 신문(동아, 조선일보)을 보는 사람들 중 거의 미칠 지경인 사람들이 상당히 많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KBS와 MBC의 탄핵 방송과 관련해서도 “시청자들의 불안 심리를 그대로 방영해 사회 불안을 부채질하기보다, 원인 진단과 대책을 차분하게 논의하는 내용이 아쉬웠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들 방송은 3월 12일 탄핵 소추안이 가결될 당시, 국회의 혼란 장면을 수십차례 되풀이 방영하면서 야당만 비판하다가 결국 편파 논란을 초래했던 것이다.
방송사들은 국민 다수가 탄핵을 반대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손영준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사회적 논란에 대해 여론 조사로 방송의 프레임을 결정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사법 당국이 불법으로 규정한 촛불집회나 인신공격성의 인터넷 패러디물 유포를 “표현의 자유”라고 편들었지만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든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막말 방송, 그 이후’다.
정연주(鄭淵珠) KBS 사장은 3월 초 기자 간담회에서 수신료 인상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총선 결과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가 추가 질문이 이어지자 얼버무렸다. 총선 이후 유리한 여건이 형성되면 수신료 인상을 본격 추진하겠다는 뜻인가.
한 방송학자는 “한국처럼 두 공영방송사가 편파 시비를 불러올 만큼 한목소리를 내는 현상은 유례를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KBS와 MBC는 이미 PD연합회 등 방송관련 단체들의 연대로 특정 사안에 대해 공동보조를 취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방송 시장의 독과점을 통해 상당한 수준의 자본력도 갖추고 있다.
이런 두 공영방송사가 앞으로 막말 방송을 걸러내지 않으면 방송의 정치 세력화에 더욱 의혹의 눈길이 쏠릴 것이다. 방송학계에서는 두 방송사의 ‘한목소리 현상’을 두고 “한국 지상파 방송들도 문벌이나 군벌처럼 ‘방벌(放閥)’이 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방벌은 해체되어야 한다.
허 엽 문화부 차장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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